상단영역

본문영역

제가 변한 게 맞습니다

[완도 시론] 박준영 / 법무법인 '새봄' 변호사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10.18 11:37
  • 수정 2019.10.18 11:40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준영 / 법무법인 '새봄' 변호사

고문을 한 경찰보다 고문 주장을 들어주지 않고 배척한 검사가 더 밉다고 했습니다. 국가폭력 피해자가 재심법정에서 검사에게 한 말입니다. 가해자인 경찰을 향한 분노 그 이상이었습니다. 

제대로 돕지 못하거나 도움을 거절하면 잘못된 수사와 재판을 했던 공권력만큼 저를 비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법피해자에게 저는 또 한 번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애정과 기대 그리고 실망과 분노. 오늘 집회에서 보인 검찰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애정과 기대에서 출발한 경우도 많을 겁니다. 

검찰 시보 때 검사의 조사과정을 지켜보면서 놀란 적이 있습니다. 검사가 나이 드신 노인에게 반말을 했습니다.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말 한마디 못하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참기 힘든 모멸감을 안기는 수사가 얼마나 많을까 싶었습니다. 

별건수사, 타건 압박수사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검찰만 한 게 아니라 경찰도 했습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낙동강변 살인사건은 별건으로 구속해서 50일 동안 살인사건 수사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문도 있었구요. 이런 잘못된 수사방식으로 인한 공포, 이런 공포에 대한 직·간접 경험이 오늘 집회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런 과잉수사, 탈탈 털어서 똘똘 말아 집어넣는 수사를 원할 때도 있습니다. 내 기준에서 죽일 놈이면 인권보다는 엄벌이 앞서는 것 같습니다. 

재심사건을 공론화하면서 시민의 공분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생각에 자극적인 글과 말을 썼습니다. 때로는 오해받을만한 증거를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위법수집증거여서 법정에서도 증거가 될 수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모든 걸 드러내놓고 독자로부터 평가받아야 한다는 박상규 기자와 다퉈가면서 제 주장을 관철시켰습니다. 

현직 검사가 쓴 베스트셀러 ‘검사내전’에는 이런 제가 ‘야심가인 변호사’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제가 특정되지 않았고 두 줄 정도로 짧게 정리되어 있었지만, 저는 저를 바로 알아봤습니다. 저자에게 확인한 부분입니다. 더 쎈 표현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공론화를 통해 잘못된 수사와 재판의 문제를 지적했고, 시민들의 공감과 응원으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공론화의 긍정적인 부분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저는 결론을 정해놓고,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은 부분만 강조했습니다. 불가피했다는 생각도 합니다만, 요즘 저는 법과 제도에 대한 과도한 불신의 원인 제공자가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들 때가 많습니다. 

제가 진행한 재심사례를 근거로 본인의 억울함을 이야기하는 분들, 어떤 주장의 근거로 활용하는 분들을 봅니다. 염치 없이 갖다 쓰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꽤 있습니다. 약촌오거리 사건의 재심과 무죄가 가능했던 이유는, 진범을 잡은 형사의 노력 덕분이었습니다. 이전에 검경수사권조정이 문제될 때 경찰은 이 형사를 활용하려 했습니다. 이 형사는 그 후에도 일선 수사업무에 복귀하지 못하고 지구대를 전전하다 퇴직했습니다. 

제가 변한 것 같다는 분들이 계십니다. 네, 변했습니다. 저는 지난 8월 9일 세 장의 서류를 받았습니다. 경찰이 제 휴대전화 통화내역, 이메일, 카카오톡을 압수수색해 살펴봤다는 내용입니다. 이 사건은 5년 동안 검찰이 처분을 못하고 있다가 최근에 기소유예로 종결했습니다. 저를 기소하는 게 부담인 사건입니다. 저는 곧 검찰의 기소유예처분을 다투는 헌법소원을 제기합니다. 

이전 같았으면 기소도 못할 거면서 제 신상을 뒤지는 압수수색을 했고, 5년 동안 사건을 뭉개고 있다가 비겁한 결정을 했다고 비판하며 여기저기에 알렸을 겁니다. 그런데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난 여름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간 사실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사법 불신에 제 일을 보태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요즘은 때로 이런 압수수색도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지연된 정의’에 김훈의 ‘자전거 여행’에 실린 글 ‘망월동의 봄'을 인용하였습니다. 책을 쓸 때는 잘못된 공권력들이 이 글을 읽어보기를 바라는 심정이었습니다. 지금은 공권력이 바로 서기를 바라는 분들께서 ’이세영 씨의 두려움‘도 참고해주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일부를 인용합니다. 

이세영 씨는 1980년 5월 21일 오전 11시 도청 앞 시위 때 총을 맞았다. 지금은 목발을 짚고 다닌다. (중략) 5월 18일에 권투 선수 박찬희의 타이틀 매치가 5회 KO로 끝나는 걸 보고 친구들을 만나러 거리에 나왔다가 행진하는 군인들을 보면서 “공수부대는 과연 멋지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군인들한테 붙잡혀서 무조건 두들겨 맞았다. 맞고 나니까 도대체 왜 맞았는지를 알 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 대한 그의 의문은 시작되었다. 군인들이 사람들을 마구 쏘아 죽이는 걸 보고 나서야, 저자들을 저대로 내버려두어서는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그는 도청으로 향하는 시위 대열에 끼어들었다. 복부에 총알 두 발을 맞았다. 척추가 관통되어 다리를 쓸 수가 없게 되었다. (중략)
“자녀들이 아버지의 목발에 대해서 묻지 않는가?”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다. 아빠는 왜 목발을 짚느냐고 물어 온다.”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나?”
 “옛날에 다쳤다고 대답했다.”
 “군인과 총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말하지 않았나?”
 “말하지 않았다. 내 아이들이 군대 전체와 국가권력 전체를 증오하게 되는 것이 두려워서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