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마음에 점처럼 남는 책갈피

[완도의 자생식물] 119. 산들깨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10.25 10:54
  • 수정 2019.10.25 10:57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봄부터 꽃피는 물결 따라 여름 지나 가을에 피는 꽃들을 보면 슬퍼진다. 나는 아직 지는 꽃을 보지 못했다. 지는 꽃이 내 앞에 있어도 아직은 지지 않은 꽃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지는 꽃을 보려고 한다. 꽃 지는 날에 나 홀로 앉아 가난한 꽃씨 하나 간직하려고. 그래야 내년, 내후년에도 꽃을 또 볼 수 있을 테니.

들깨는 고요한 모닥불 같은 마음을 지녔다. 사람 사는 곳으로 따뜻한 눈물이 있고 그 눈물이 어둠을 밝히고 가난한 사랑의 불씨가 되었다. 그런 곳에 산들깨꽃은 반드시 있다. 어제 산들깨꽃은 그 자리에서 오늘만큼을 그대를 사랑하였음을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슬픔의 길로 가는 생명을 떨어내고 있다.

산들깨 그의 길이 이제 죽어서도 첫눈처럼 첫사랑을 그리워하면서 그는 아직 그리움이 끝나지 않음을 낮 동안은 햇빛에 데어 둔 방 한 칸에 따뜻한 마음을 두고 싶은 것일까. 산들깨는 산과 들에서 햇빛이 잘 드는 데에서 자란다. 아주 작은 초록별처럼 핀다. 들국화 속에서 필 땐 작고 귀여운 보라색 빛깔이 더욱 빛난다. 

올해 산에서는 꽃피는 시기가 늦어서 10월 하순까지 산들깨 꽃이 피어 있다. 산들깨꽃은 대부분 사람이 모르는 야생초이다. 나도 며칠 전까지 정확한 이름을 불러 주지 못했다. 그러나 날마다 마주치면 눈인사를 하고 지내왔다. 이렇게 꽃들은 이름도 한 번 듣지도 못하고 무슨 일로 와서 피었다 지는지 알 수 없이 쓸쓸하게 마른 풀잎에 씨주머니를 달고 있다. 

곧 땅에 떨어져 얼마만큼 세상이 힘들었는지 마음 한 점의 씨앗으로 기억될 것이다. 밭에서 피는 들깨꽃이 지금은 순한 어머니의 마음이 한참동안 쏟아지고 있지만 산에서 피는 들깨꽃은 마음에 눈을 달며 초록별 하나를 책갈피에 두어야 보이는 꽃. 가을 찬바람에서 가슴 속 깊이 두고 싶다. 

푸른 잎세에 가냘픈 꽃잎 따라 어디든 떠나는 시절은 지나 가을이란 지는 꽃들이 하나 둘 셋씩 떠나는 꽃을 보고 감사해야 때가 왔다. 봄부터 허리 굳혀 야생초가 기억되는 것은 꽃피는 일이었다. 지금은 꽃 지는 쓸쓸함이 오히려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마음을 데우는 일이다. 산국화 옆에 쓸쓸히 떠나는 산들깨도 멀리서 비쳐오는 희미한 등불을 보고 그리운 사람이 더 그리워하듯 산꽃이나 사람이나 다를 바 없단다. 

키 작고 아주 작은 꽃 곁에서 눈물은 아직 마르지 않았다고 너를 고요히 만지고 있다. 저녁나절 한참동안 흔들어대는 것도 저녁 무렵 고요히 머무는 것도 너에 대한 생각이 깊어서이다.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