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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빛을 보고 있으면 번뜩이는 깨달음

[완도의 자생식물] 120. 개옻나무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9.11.01 11:18
  • 수정 2019.11.0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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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한 봄산을 지나 연한 초록 꽃 같은 꽃이 진짜 초록색으로 꽃을 피운다. 상수리과인 꽃들은 다 초록색으로 꽃을 피우며 떡갈나무도 마찬가지로 연한 초록색으로 꽃을 피운다. 가을의 남도 산은 초록꽃 나무들이 붉은 단풍잎으로 변했다. 

언제나 삶이 초록으로만 살 것 같았는데 이제 스스로 붉은 얼굴을 드러내는 까닭은 무엇일까. 마지막 계절의 가슴에 온도를 지피어 무거웠던 지난날을 가벼운 낙엽으로 되고 싶은 까닭일까. 분홍빛 그리운 봄비만 있는 줄 알았던 나이에는 초록색으로 핀 초록꽃을 그냥 스쳐 지나갔다. 봄이 활짝 피고 연초록 봄산에 초록꽃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세월을 훌쩍 넘어서야 알았다. 개옻나무 단풍속에서 초록꽃 떡갈나무가 노랗게 물들고 있다. 봄은 마음에서 온다고 하지만 가을은 개옻나무 빨간 단풍에서 온다. 그만큼 개옻나무는 일찍 가을 산을 만들고 있다. 어릴 적에 옻을 타게 돼 옻나무를 알게 되었고 참옻나무는 뒤늦게 알게 되었는데 스무살 때 위장이 안 좋아 어머님이 옻닭을 해 주어서 그때 알게 됐다. 몇 해 전부터 두 나무의 차이를 알게 됐는데 참옻잎은 넓고 개옻은 좁고 잎의 갯수가 더 많다. 잎 줄기는 개옻은 빨갛고 참옻은 푸르다. 
가장 쉬운 방법은 나무 밑동이나 나무 껍질에서 무늬에서 확실하게 구별 할 수 있다. 참옻은 가로로 짧은 무늬가 있고 개옻은 세로로 무늬가 나 있다. 산국화를 따다 산감나무 옆에 앉아 있던 어머니는 산감을 제일 좋아 했다. 하늘에 잘게 달려있는 산감나무는 차가운 세상을 껴안을 만큼 맑고 깨끗한 밥이었다. 어린 눈으로 어머니가 산감을 그렇게 좋아 하는 이유를 몰랐다.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다 보니 그렇게 떫은 산감나무 옆에서 쓰디쓴 어머니 눈물을 이제 보였다는 사실이다. 

너무 떫기에 아무도 먹지 않았던 산감을 어머니는 제일 좋아했다. 그래도 자식 앞에선 삶이 쓰다고 말하지 않았고 단 개옻나무 붉은 열정만이 산감나무 옆에서 지금도 남아있다. 지난날 초록꽃에서 피어나 사랑하는 감정들을 숨겨놓아다가 온 산빛으로 토해낸 개옻나무 붉은 얼굴과 마주선 늦은 오후 햇빛이 너무 황홀해서 서럽다. 세월이 흘러 시간의 풍경이 변하지 않는 것들은 있다면 마음의 끝에서 끝으로 가는 거리가 아닐 까 생각된다. 

산에는 어느 한 나무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수없는 자연이 모여 봄산이 되고 가을 산이 된다. 이들은 하나같이 말이 없다. 그러나 유심히 산빛을 보고 있으면 깨달음이 많다. 마음의 끝을 움직여 만 가지 형상을 교차하게 한다. 그러나 여기는 엄연히 질서가 있다. 마음을 순하고 정결하게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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