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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스쳐 지나가는 아련한 그리움

[완도의 자생식물] 121. 담쟁이덩굴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9.11.08 14:03
  • 수정 2019.11.08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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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반쯤 넘으면 속 뜰에 피는 담쟁이 얼굴을 보게 된다. 삶의 뜨락에서 다시 핀 상춧잎 같은 사랑도 노란 쑥갓꽃 옆에서 수줍다 한다. 지나가는 누이의 첫사랑을 기억하는 담쟁이잎에서 첫눈을 기다리는 설레임이 있다. 나도 몰래 담쟁이덩굴에 마음의 손을 뻗고 있다. 담장 넘어 미련 없이 떠난 노랑나비들은 아직은 배추밭에서 앉아 있다. 

지난 여름날에 연한 부리로 말하는 초록 담쟁이 잎들은 지금은 제 마음을 알리려는 눈빛들은 때 묻은 지난 삶을 주홍빛 가슴으로 서려놓고 있다. 오늘도 병들고 슬픔 사연을 담장을 치고 친한 이웃들과 허물을 안으로 쓰다듬는 담쟁이덩굴은 그들만이 아는 비밀을 간직한 가로등만이 그 사실을 아는 채 고요히 불을 밝히고 있다. 토담집 기와집에서는 가느다란 어머니의 생명을 이야기하고 있는 걸 담쟁잎은 마음을 다해 그려내고 있다. 쓸쓸한 창가에서 넓적하고 빨간 단풍잎처럼 어느 중년의 외로운 비밀을 그 액자 속에서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게 간신히 그 마음만을 걸어 놓고 있다. 늦가을 꽃들은 아직은 수줍음이 피어나고 듬성듬성한 얼굴들은 담쟁이덩굴 잎에서 아직은 눈물 있어서 야트막하게 또 한 사람과 이별이 올까 봐 야생화가 피어 있는 들판에서 서성이고 있다. 담쟁이덩굴은 바위나 나무 또는 담벼락에 붙어 자라는 식물이 있다. 소나무나 참나무를 곧게 타고 올라간 담쟁이덩굴은 높이가 수 미터 이상 올라간 것도 있다. 오래된 것은 지름이 어른 팔뚝 정도 굵기로 자란 것도 있다. 중간에 올라가다 잔가지를 치면서 함께 뻗어 올라가기도 한다. 흔히 덩굴식물은 다른 나무를 시계방향이나 반시계 방향으로 감고 올라가는 것이 특징인데 담쟁이덩굴은 나무의 껍질을 타고 마디마다 점착성이 있는 빨판의 잔뿌리를 내리면서 곧게 뻗어 기어 올라간다. 잎은 가을에 지지만 줄기는 겨울에도 말라 죽지 않고 살아 있다. 꽃피는 시기는 7월이고 검은색으로 6~8밀리 크기로 열매는 11월에 열린다. 지난 세월을 켜켜이 쌓여 놓은 담쟁이덩굴에서 누이의 첫사랑을 기억하고 있는지 주홍빛 담쟁이 잎에서 첫눈을 기다리고 있다. 담쟁이덩굴 담장 곁에 시금치는 푸른 마음을 지닌 어머님의 별처럼 포근하게 내려올 것 같다. 지난 온 세월의 처연함을 알게 될 때 담쟁이덩굴은 모닥불 곁에서 따스함과 희망이 켜놓고 있다. 담쟁이잎 위에 떨어진 진눈깨비 같은 첫사랑도 그때가 진실이 있었고 쓸쓸한 추억이 있었다. 생각은 찬 곳에서 있지만 마음은 따스한 찻잔 속에서 그리워할 사람 없어도 그립게 만드는 그 무엇인가 있는 듯하다. 배춧잎만한 나이에서도 진홍빛으로 여울진 담쟁이덩굴 속에서 빨간 열매로 영글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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