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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나에게 묻고 답하길,

[에세이] 박소현 / 횡간보건진료소장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11.15 14:41
  • 수정 2019.11.15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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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 횡간보건진료소장

나무가 나에게 묻고 답하다
                               -written by Sunshine            

오늘의 나를 보냈느냐?
오늘을 어떻게 넘겼느냐?
내일도 넘길 수 있겠느냐? 

오늘의 나무는 나를 보며 묻고,
나는 나무에 시원한 답을 못한다.
참다못한 나무가 말한다.

“그냥 비우고 그냥 살아보아라!
   나는 이렇게 보아도 나무고, 
   저렇게 보아도 나무지 않느냐!
   먼 훗날에 어떻게 보든 너는 너일 것이니
   그냥 너! 아파하지 말아라!”

아무리 바람이 불고 나무가 흔들려도 나에겐 마치 화면만 켜 둔 텔레비전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던 먼 세계인듯한 나날들이 있었다. 

오후면 환자가 없을 시간대에 혼자 사시는 어른들의 집을 찾기 위해 동네를 오르곤 한다. 
동네의 중심에 자리 잡은 큰 팽나무 한 쌍. 보호수로 지정되어 마을에서도 마을 수호신으로 귀히 여기는 나무 부부다. 그날도 한껏 움츠러든 발걸음으로 나무 앞을 지나다 위를 올려다보니 가지에서 가지가 나오고 또 가지가 나와 어디를 보아도 나무더라. 머릿속에 스치는 시 한 수를 메모하며 불혹(不惑)을 살아갈 방향을 찾아낸 듯 입꼬리가 올랐다.

사람 사이에서 부대끼며 얼마나 힘들어했던가! 귀도 막아보고 울어도 보고, 참는 것이 전부라 여겨 미련스럽게 속으로 나 자신을 옭아매고 볶으니, 타들어 가는 것은 나의 속이오, 어느새 내 몸에는 내가 의도하지 않은 색상의 옷들을 입은 피에로가 되어 있었다. 활시위를 내게 겨눈 자들을 끝내 용서하고 품고 가려는, 미워하지 않으려는 타인을 향한 미련한 사람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벗어던졌다. 

꽁꽁 묶어버린 내 몸의 밧줄을 끊어내며, 주위를 살피자, 스스스 여린 잎들을 부대끼며 대나무들이 내는 소리 강아지풀과 갈대의 흔들림이 눈에 들어오고, 나무 위를 노니는 작은 새들의 지저귐까지 오롯하게 들려왔다. 

 떠날 사람은 신발을 숨겨도 떠나고, 돌아올 사람은 스스로 돌아오며, 다만 나는 나로서 내 자리에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발 달려 떠도는 말 따위에 아파하지도 말며, 다만 좋은 사람들과 좋은 교감을 나누고 좋은 점을 배워나감으로써 내가 내 중심을 잡고 사는 힘을 키우는 시간으로 불혹을 맞이한다면, 이 얼마나 복된 순간이런가! 

이번 가을, 떨어지는 낙엽이 유난히 아팠던 이가 있다면, 이 팽나무 부부를 보고 힘을 얻길 빌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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