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황칠나무 이야기 열넷

[배철지의 완도 황칠 이야기 14]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11.15 14:51
  • 수정 2019.11.15 14:54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지금도 수난을 당하고 있는 상왕산 황칠나무. 예전에는 공납을 피해서, 지금은 무분별한 남획으로 수난을 당하는 중이다.

조선시대의 기록 중의 특별한 것은 이웃 강진에 유배되었던 다산 정약용의 시문이다. 
다산의  탐진촌요(1804년)에 

완도산 황칠은 유리마냥 찬란해
진기한 나무라고 천하에 소문났네.
지난해 임금께서 황칠 공납 풀어준 뒤
베어낸 밑둥지에서 새싹 나고 가지 뻗네.

다산이 칩거했던 강진 인근의 공납 비리를 정약용은 『목민심서』의 산림편에 자세히 기록하였다. 

“황칠 공납을 둘러싼 지방관리들의 횡포가 너무 심해서 견디다 못한 백성들이 황칠나무와 유자나무에 구멍을 뚫고 호초를 넣어 말라 죽게 하거나 밤에 몰래 도끼로 베어버렸다”

황칠나무가 분노한 백성으로부터 악목(惡木)으로 지칭되어 수난을 당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가장 진귀한 물품은 생산자가 사용하지 못하고 지배 계층의 전유물이 된 것은 흔한 일이었다. 황칠도 부지런히 긁고 모아서 공납으로 올리기 바빴으니 이 지역에 사는 민중들에게는 그저 골치 아픈 나무였을 것이다. 그래서 말려 죽이거나 겨울에 사용할 땔감을 장만하기 위하여 가을에 철나무를 할 때 황칠나무도 많이 베고 자르기도 했다. 이는 황칠나무가 황칠을 함유하고 있어서 마르면 소나무에 버금갈 정도로 화력이 좋고 무게 또한 가벼워서 지게로 운반하기가 쉬웠기 때문이었다. 

▲ 지금도 자생하고 있는 상왕산 황칠나무


그러나 사찰 보호림이나 깊은 산중의 나무들은 씨앗을 남겨 자생지의 맥을 이어온 것으로 추정 된다.

황칠의 전모를 한눈에 알 수 있는 다산의 시가 있다. 천하의 명물 황칠의 우수성을 상찬하고 있다. 공납이 면제된 뒤로 멸종 직전의 황칠나무가 되살아났다고 읊고 있다.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