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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게 물든 가을 노을의 향기

[완도의 자생식물] 123. 유자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9.11.25 12:19
  • 수정 2019.11.25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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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으로 오는 가을 치자물감처럼 초라하지 않으면서 기품이 있는 겉보다는 속이 아름다운 사람. 가을엔 깊은 색으로 출렁이는 노을빛 향기를 가슴에 품어 보련다. 여름에 치자 꽃향기는 하얀 속치마까지 물들어 오는데 가을엔 치자 열매는 지평선 끝에서 밀려오는 노을빛처럼 가슴속까지 밀어온다. 치자가 있으면 유자가 있는데 꽃도 비슷하게 피어서 지금쯤 열매로 다시 만난다. 시골 돌담길에 유자나무는 색다른 남도의 마을 풍경이다. 향토길 언덕에서 잠시 쉬어가는 가을 햇빛이 황색으로 물들인 치자열매에 평화스러운 가을 길을 만든다. 어쩌면 남도에서만 볼 수 있는 황토 땅, 치자, 유자는 남쪽바다에서 가장 온유하게 밀려오는 석양빛과 같다. 이러한 풍경은 남도인의 인정미이다. 치자는 색이 아름다워서 유자와 잘 어울린다.

치자나무는 쌍떡잎식물 합판화군 꼭두서니목 꼭두서니과의 상록관목으로 중국이 원산지인데 높이 1∼2m이며 작은 가지에 짧은 털이 있다. 잎은 마주나고 긴 타원형으로 윤기가 나며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꽃은 단성화로 6∼7월에 피고 흰색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황백색으로 된다. 열매는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 또는 타원형이며 가을에 황색으로 익는데 이를 치자라고 하며 한방에서는 불면증과 황달의 치료에 쓰고 소염과 지혈 및 이뇨의 효과가 있다. 음식물에 노랑 물을 들일 때는 물론 옷에 물들일 때나 옛날에 군량미의 변질을 방지하기 위해도 쓰였다. 고향으로 되돌아가 툇마루에 앉아서 실로 엮어서 기둥에 걸어 놓은 어머니 솜씨를 보고 싶고 주황색 열매를 찧어 노란 물을 우려내어 색을 예쁘게 들이던 시루떡을 먹고 싶어진다.

치자 꽃에서는 있는 향기 모두 내어주어도 그 향기는 투명하게 비쳐온다. 치자에서 나오는 물감은 가장 여유롭게 오는 색이다. 기다려야 꽃 향기가 맡을 수 있고 곰곰이 생각해야 그 열매에서 기품을 만질 수 있다.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평화스러운 자연의 물감을 마음에 들이고 싶다. 남도에서 늘 푸른 나무를 보고 싶은 땐 유자, 치자, 비자 같은 나무다. 여기에 동백나무와 비파나무를 함께한다면 남도의 겨울 풍경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다. 감나무 끝에 간신히 달려있는 홍시를 보면 왠지 쓸쓸한 느낌마저 든다. 그런데 푸른 잎에 유자를 보고 있으면 조금이나마 마음을 덥힐 수 있다. 지난 세월에는 유자나무 한 그루만 있으면 자식 하나를 대학에 보낼 수 있었단다. 참으로 귀한 나무였겠지. 비파나무는 자생력이 강하다. 마을에 비파나무 한 그루만 있어도 온 마을로 번진다. 이렇게 번지게 하는 조력자는 새이다. 남도의 겨울 풍경은 3자(유자 치자 비자)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늘 푸름이다. 특히 유자와 치자는 향기마저 서로 닮아가길 원하다. 꽃망울에서 열매까지 내면의 향기를 그윽하게 채우고 남는 것이 있다면 남도의 그리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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