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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군 지역의 연륙 · 연도교는 조속히 시행돼야 한다

[섬, 섬 사람을 말하다] 섬 사람의 애환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11.29 11:32
  • 수정 2019.11.29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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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호 / (사)한국글로벌섬재단 이사장

○ 완도지역의 생활환경 변화 
 완도지역은 물산이 풍부한데다 일제강점기 때에나 해방 이후 ‘70대 까지도 해상 교통이 발달하여 (대)도시인 부산, 목포 등으로 여타 지역에 비해 편리하게 교류가 이루었다.  완도는 대부분 마을이 바다에 접해있다. 그러한 관계로 전국 어느 곳 보다 바다를 통한 삶이 크게 이루어져 왔다. 5·60년대에 국가 산업구조가 매우 취약할 때 수산물은 국가 외화획득의 하는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는 효자중의 효자 노릇을 하였는바, 그 중심에 완도의 각 섬에서 생산되는 김을 비롯한 생산물은 그 중심에 있었다. 

 완도군내 모든 곳이 섬이었다가 1963년 해남 남창리와 군외면 달도, 그리고 1968년 원동-달도가 교량에 의해 연결된 이후 계속하여 신지-완도, 고금-강진 마량, 약산-고금 간에 연륙·연도교가 건설되었다.

 ‘70년대 초까지 완도 각 섬 주민들은 여객선을 통해 서부 쪽에 위치한 섬들은 목포방향으로, 동부에 위치한 섬들은 녹동, 여수, 부산으로 생활에 필요한 삶의 중심지로 드나들었다. 이때 여객선을 타고 다닐 적에 육지지역은 도로가 제대로 개설되지 않았거나 도로사정이 아주 열악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이후 70년대와 80년대 들어 국가 경제성장과 함께 도로가 개설되고 도로포장 등 육지부의 교통망이 급속하게 발달됨으로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여건을 가지고 있는 여객선은 그 영광의 자리를 버스 등의 육상교통수단에게 넘겨주게 되었다. 그러나 부산이나 목포로 가는 장거리 여객선은 사라졌지만, 섬 주민 삶은 여전히 가까운 육지해안의 적환지점(해안중심지)로 다니는 여객선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도서지역은 본원적 특성인 외부지역과 교류가 원활하지 못하고 외부 특히 중심지와 떨어져 고립되어 있는 격절성이 높다. 어떤 편리한 편익시설을 설치하려 해도 그 시설이 존립하기 위한 이용인구가 충분히 있어야 하는데 격절성으로 섬내 거주민들만 이용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다시말해 인구(이용자)의 소규모로 인한 임계치(threshold)문제로 삶에 필요한 각종 편익시설을 당해 도서에 마련하기 어렵다. 결국 불비된 시설(기능)은 섬 밖의 지역에서 이용해야 하나 여기에는 접근성의 문제가 있게 된다.

○ 절실한 연륙·연도
가끔 일부 학자나 외부에 사는 사람 중에는 연륙·연도교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강한 의문이 있다. 그렇게 섬인 채로 그대로 격절된 곳이 좋다면 그들이 그곳에 살아보지 그런가?

그들은 현재 어디서 살고 있는가? 그들은 도시지역 그것도 가능한 가능 편리한 곳, 게다가 학군이 좋은 곳, 또 가능한 앞으로 집값이 오를 가능성이 높은 곳을 찾고 또 찾아 가지 않는가.  섬은 왜 그대로 섬으로 있어야만 하는가?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계속 섬사람은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가? 이미 섬에서 연륙이 되었던 곳의 거의 대부분이 연륙에 크게 문제가 발생하여 그 연륙된 시설물을 없애는 것이 좋다고 하고 있는가?

영국 도버-프랑스 칼레간 유러터널이나 일본의 혼슈-홋카이도간 세이칸 터널, 우리나라의 영도, 강화도, 진도, 남해도, 완도 등등이 연륙된 시설물을 없앤다고 하면 어떤 생각들을 할까.
섬에서 살아보지도 성장하지도 않고 동물원에 가서 동물 보듯이 섬에서 무엇인가 찾겠다고 섬은 그대로 불편한 채로 두어야 한다는 서투른 낭만적 사고로 연륙·연도를 반대해서는 안 된다.

○ 섬 마을 생활의 아픔

완도군내 섬마을은 모두 비슷한 실정이었지만 필자의 고향 충도는 60년 70년대 김 생산으로 육지 어느 곳보다 잘 살았고, ‘80년도 내무부에서 발간된 도서백서에도 전국의 10대 잘사는 도서로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섬 내에 교육기관은 오직 초등학교 밖에 없었다. 이제는 그나마도 폐교 된지 오래되었다.

주민들의 소득은 높았지만 타 지역으로 소위 유학을 하며 중·고등학교를 다닐 수가 어려웠다. 유학에 따른 비용이 학교 등록금 보다 훨씬 높고, 아주 바쁜 철에는 생업을 도와야 하는데 집을 완전히 떠나 타지에 거주해야 하는 것이 걸림돌이 되었다. 그래서 1개 반으로 구성된 학급 학생이 졸업될 때 겨우 1~2명 정도만이 중학교 진학을 위한 유학길을 떠났다. 섬 내에 중학교나 고등학교가 있었더라면, 아니 상당한 거리라도 중·고등학교가 있는 곳과 버스로 통학할 수 만 있었더라면 많은 아이들이 상급학교를 다녔을 텐데......

3년 전 겨울 날, 서울 인근에서 고향 3~5년쯤 후배들이 모임하는 자리에 초대를 받아 참석했다.

분위기가 따뜻하게 익어갈 무렵 한 친척인 여자 후배가 ‘오빠처럼 그때에 우리도 중학교나 고등학교만 다녔더라면...하면서 눈시울을 붉히자 갑자기 분위기 숙연해지며 여럿이서 눈물을 훔치게 되었다.

또한 이들은 서울에서 힘들게 살다 명절에 어렵게 표를 구해 고속버스를 타고 광주로 와서 광주에서 다시 고향을 가는 길목인 녹동부두에  총 7~8시간을 걸려서 도착 했다. 그러나 폭풍주의보가 내려 혹시나 배가 뜰까 녹동 부두가에서 이틀을 꼬박 기다리다 10km 남짓에 불과한 바다 건너에 부모님이 계시는 정든 고향 땅을 지척에 두고 눈물을 뿌리며 돌아섰던 적이 있다는 얘기를 했다.

○현재도 진행중인 불편과 위험

지금도 많은 섬에는 학교가 없으며 이곳에 취학연령 아이들이 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대부분 지역에서 적정규모학교 정책으로 소규모 학교를 줄여가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도서지역 역시 이 정책에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문제는 무교(無校) 도서지역에 취학 대상자가 발생하였을 경우에 가장 중요한 문제가 제기된다. 이미 (완전히)폐교된 도서지역에 학교가 재 개교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여전히 이 아침에도 학교가 없는 섬 지역 아이들은 일상에 바쁜 부모의 보살핌 없이 집에서 걸어 나와 선창에서 여객선을 기다리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건너편 섬이나 육지 부두에 도착하여 한참을 걷거나 다시 버스를 타고 인근 지역의 학교를 가고 있을 것이다. 이제 막 엄마 젖을 뗄둥 말둥한 5, 6살짜리 유치원생이 이 위태롭고 험한 길을 매일 다니는 곳이 아직 우리 대한민국에 존재한다. 또 폭풍 등 주로 일기불순과 선박수리 등으로 인해 많은 날에는 여객선이 운항하지도 못하고 있다. 

몸이 아파 병원에 제때 가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 중에 으뜸이다. 일기불순으로 여객선이 오지 않고, 운항하더라도 그 불편성으로 선뜩 의료시설을 찾아 나서기 힘들다. 또한 어려운 병으로 입원이라도 하게 되면 간병하는 것이 보통이 아니다. 이러다 보니 병원에 자주 못가고, 병을 악화시키고 위급시에 골든타임을 놓쳐 죽어가는 경우도 많다. 아마 섬에 사는 주민들 중에 가족이나 친척 중에 이러한 경우를 다들 겪었을 것이다.

  
○ 시급히 이뤄져야 할 완도관내 연륙과 연도

교통은 인간 생활에 가장 중요한 핵심요소이다. 인간이 활동하는데 신체의 일부인 발과 다름 없다.

오랫동안 바다를 통한 해상교통이 인류사에 중심을 이루어 왔으나, 근래들어 육상교통이 크게 발달하여 차량이나 철도 없는 세상을 단 하루라도 생각할 수 없다. 

홍수로 집 앞의 도로가 끊어지고, 자기용의 고장으로 잠시라도 운행할 수 없을 때에 그 불편을 참기 어려워한다. 선박이라는 수단으로 운항하는 해상교통은 얼마나 상대적으로 불편하고 위험한가?

하루속히 가능한 곳에 연륙·연도교를 건설하는데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섬과 관련된 각지에는 연도·연륙교를 완공하였다고 또 곧 완공된다고 기뻐서 야단이다. 목포·신안 쪽에는 압해도에 목포대교와 김대중대교가 개통되더니 금년에는 무려 10.8㎞에 달하는 천사대교까지 완공되었다.

고흥 쪽에는 소록도를 거처 거금도를 연결하는 교량이 완공되었고 여수-고흥간에는 여수시 화양면, 조발도, 둔병도, 낭도, 적금도, 고흥군 영남면까지 해상교량 5개를 건설하고 있어 머지않아 완공될 예정에 있다. 

이럴 때 우리 완도지역은 무엇을 했는가? 당시 지도자들은 어떤 노력과 전략을 구상했는가? 지금이라도 여러 방안을 강구해가는 모습에 응원을 보낸다.

해남-완도-신지-고금-(마량)-조약도(약산)로 연결되어 온 교량으로 인해 행정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비롯하여 생활전반이 얼마나 편리졌는가?

서부권 도서들간에는 기존 노화-보길간 연도에 조속히 소안도와 연도가 되어야 한다.

동부권 섬지역에는 조약도에서 평일도를 비록한 금일권 도서와 금당도를 거처 기존 완공된 거금도와 연결되는 사업은 반드시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기존 해남-완도권 연도를 통한 교통망이 거금도- 고흥반도를 걸쳐 고흥-여수간의 해상도로가 완성된다면 주민의 편리성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 교통망 측면에서나 관광 측면에서 그 효과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마치 현재 평일도- 금당도가 빠져있는 해상도로망은 마치 한가운데 치아가 빠진 것 보다 더 못하다.

혹자는 금일권이 교량으로 연결되면 녹동과 여수권으로 더 쏠리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얘기도 들린다. 참으로 답답하다. 불편을 불모로 편리함과 삶의 여건 개선을 막고 울안에 가둬두어야 한다는 말인가. 이 같은 생각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이는 말도 되지 않는 바보 같은 망상이고, 아주 작은 것에 천착하는 소아기적 사고이다. 


필자 소개> 신순호 명예교수는 (사)한국글로벌섬재단 이사장 겸 목포대 명예교수는 공군대학 교관을 거쳐, 청주대 교수와 목포대, 일본 리츠메이칸대학(방문연구교수)에서 오랫동안 교수로 재직했고, 대외활동으로는 한국도시행정회·한국지적학회 회장,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광주·전남회장,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위원과 평가자문단장, 행정자치부 자체평가위원 및 정책자문위원, 한국농어촌공사 이사, 국가(고등)고시 등의 각종 출제위원과 행안부 지방자치인재개발원을 비롯 여러 공공기관·단체에서 특강을 하고 있음, 지역개발과 정책분야 그리고 섬과 지역연구에 관심을 갖고 「도서지역의 주민과 사회(2001)」를 비롯해 7권의 저서와 130여편의 학술논문 등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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