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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적인 그리움을 품은 나무[완도의 자생식물] 125. 먹구슬나무
신복남 기자 | 승인 2019.12.06 14:21

12월은 기다림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새로운 해를 기다리는 사람. 첫눈 같은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 지난 이야기이지만 첫사랑을 기다리는 사람은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일이지만 아련한 추억이 되돌아올 것 같은 계절이 12월이다. 

쇠하는 댓잎 소리는 싸늘하다. 그러나 함박눈이 댓잎에 얹어있으면 모든 세상이 포근해진다. 약간 시들어진 국화꽃 위에 진눈깨비가 하염없는 눈물이 될 줄이야 아직 떠나고 싶지 않는 모양이다. 억새꽃은 바람에 긁히어 간신이 등뼈만 남아 아무리 흔들어 봐야 소리 한 점도 없다. 허허로운 잿빛 하늘 아래에서도 금방 첫눈이 올 같은 그리움은 아궁이에 마른 솔가지 한묵음이 타는 소리와 같이 아직 남아있는 열정을 지핀다. 운명 같은 재생의 에너지는 마음에서 일어난다. 

지독한 그리움은 은근과 끈기가 이어진다. 그것은 지고지순한 생명력으로 이어지듯이 말이다. 마음에서 시작하여 영혼까지 확대한 일이야말로 가장 늙지 않는 방법. 영혼이 낙점되면 그 자리에서 평생을 지키는 나무는 기다림으로 싹이 트고 큰 나무가 되어 마을 어귀에 많은 이들의 지킴이가 된다. 

먹구슬나무는 마을 속에서 산다. 누가 심어놓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와서 큰 나무가 되기까지 운명 같은 나무다. 따뜻한 남도에 자란다. 꽃은 암수한그루로 일이 먼저 나고 5월에 핀다. 잎보다 먼저 핀 수수꽃다리와 비슷한 모양으로 수많은 꽃으로 모여 핀다. 열매는 다음 해 2월까지 새들이 먹지 않기 때문에 낙과할 때까지 달려있다. 새들은 겨울에 열매가 없는 데도 얼마나 지독하면 먹지 못할까. 열매는 장내 기생충을 제거하고 머리에 피부염에 약효가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열매에서 추출물로 여드름 제거, 샴푸, 비누로 쓰이고 불가에서 염주를 만든단다. 이렇게 독이 있어 약효가 있고 새들이 먹지 못한 이유다. 자연은 스스로 아는 모양이다. 경험도 없고 학습된 결과도 아닌데 독한 과실로 아는 것을 보니 참으로 기이하다. 남도에서 이 나무는 몰고시나무라고 부른다. 12월에 이 열매에 가까이 가면 노란 색인데 멀리서 보면 약간 푸른색을 띤다. 마치 푸른 매화꽃을 보는 느낌이다. 열매를 꽃으로 보는 이유는 봄의 꽃의 자리가 아직도 흔들림 없이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그리우면 한겨울에도 하늘 끝에서 청청하게 기다리고 있을까. 

독한 마음일수록 그리움이 많다. 첫눈을 기다리고 있는 것도 독한 그리움이 있어서 더욱 그립다. 아련한 추억 하나하나가 이 열매 위에 함박눈이 얹어진 날에 더욱더 쌓여만 갈 것이다.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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