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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사의 하루

[에세이-작은도서관 편지] 이선화 / 넙도행복작은도서관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12.20 15:46
  • 수정 2019.12.20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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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화 / 넙도행복작은도서관

그녀와 그는 만조 물때에 맞추어 해상가두리에 그물과 전복 집을 옮기느라 바쁘다. 물이 높을 때 옮겨야 육지와 바다 쪽에 정박해놓은 배의 높이가 같아져, 무거운 전복자재들을 옮기기에 유리한 조건이 된다. 물때가 빨라서 바삐 옮겨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바닷가 쪽에서 성질 급한 그가 소리를 지른다. 병원에서 돌아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래도 행동이 느리자 아니 자신이 하는 말을 기계소리 때문인지 빠른 말소리때문인지 알아듣지 못하자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급하게 그물을 집어 들어 모으고 다시 배로 가서 크레인으로 집어 배에 싣는 작업을 한다. 그가 화를 내도 소리를 질러도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차광막만 접는다. 부동을 집어서 한쪽으로 모으고 흩어져 있는 일자 틀들을 한쪽에 쌓아 놓는 일을 말없이 하고 있다. 아침에 그렇게 맑고 겨울 날씨답지 않게 따뜻하더니 정오쯤 되자 바람이 세게 불고 안개처럼 뿌연 미세먼지가 끼더니 점점 더 어두워져서 비가 올 듯한 날씨가 되어버렸다. 바닷일은 물때도 잘 맞아야하고 조류의 세기 바람의 방향 비가오는지 안개가 있는지 햇님이 쨍쨍인지 모두 고려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바닷일이다.  바람이 불어 일은 할 수 없고 그녀는 그의 점심도 준비하지 않고 바삐 어디론가 가고 있다.

복지관에는 벌써 방안 한가득 동네 형님네들 동생들이 손 노름을 하는 패들과 음식을 만드는 패 그리고 입만 벌리고 있는 패들이 나뉘어 소란스럽다. 김장이 한창인 요즘 김장을 한 집은 으레 김치 몇 포기씩을 가지고 복지관 김치냉장고에 넣고 그리고 할머니들 방에도 드리고 하며 맛나게 보내고 있다. 그녀들은 방금 한 하얀 햅쌀밥을 그릇에 퍼담으며 별다른 반찬도 없이 김장김치만 손으로 쭉쭉 찢어서 김이 나는 밥 위에 걸쳐 경쟁하듯이 먹는 것이다. 그러면 금세 다디달게 한 그릇 뚝딱이다.

“누가 만들었는지 복지관 잘 만들었당게 더우면 에어컨 바람 팡팡 나와서 시원하게 해주제 추우면 이렇게 보일러 떼서 따숩게 해주제 배고프면 쌀주고 이렇게 우덜이 모여서 재미지게 놀고 맛난거도 먹고 참 시상 좋다잉 살만 하당게”하며 솔지 형님이 한마디 한다. “긍게요. 죽어라 맨날 일만 하고 집에만 있었으면 우울증 걸려서 죽었을 거랑게요.”옆에 있던 복순이네도 한소리 거든다. 금세 밥은 다 먹고 설거지 하는 패들이 나가자 방에 있던 여자들은 방을 치운다. 커피를 탄다. 귤을 꺼낸다. 누가 시킨 것도 역할을 나눈 것도 아닌데 일사천리로 착착 한다. 아마도 하루 이틀 한 솜씨가 아닌 것 같다.

“자, 이제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시작해 볼거나!” 왕언니 말씀이시다. 깔개가 깔아지고 그림놀이 판이 바닥에 펼쳐지면 그녀들만의 신세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녀는 그닥 치고 싶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우두커니 있을 수 없으니 패를 받았다. 오늘은 안되는 날인가 보다. 어제 딴 이백오십을 합한 가지고 있는 돈 오백을 다 털어버리고 뒤로 물러 앉자 쌍둥이네가 돈을 빌려 주겠다고 한다. 그녀가 “얼마를 빌려줄건디”하자 “한 천원 빌려줄까”한다. 천원이면 이틀은 손 노릇하며 놀 수 있는 돈이지만 그녀는 싫다고 한다. 오늘은 안되는 날이니 집에나 가겠다는 그녀를 조금만 있다 가라며 잡는다.

잠시 후 언제 시켰는지 통닭이 배달되고 장롱 안에 감추어져 있던 맥주, 소주가 나오고 “백여사 오늘 생일이라며 한잔 하고 가.” 하는 것이다. “형님이 어떻게 아셨데요” 참았던 서러운 눈물이 왈칵 나온다. “백여사의 생일을 위하여!”하며 술잔을 채운다. 결혼생활 43년동안 시압씨 제사하고 겹쳐서 생일을 한번도 챙겨주지 않는(시아버지 제사는 그녀의 생일 3일 후이다.) 남편이 미워서 점심도 주지 않고 경로당으로 와버린 것이다. 소맥으로 연거푸 두 잔을 마셨더니 기분이 좋아진다. 그제야 점심밥도 해놓지 않고 집을 나온 것이 생각난다. 더 놀다 가라는 형님들에게 영감 밥 줘야 한다며 허둥지둥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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