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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속에 피어나는 새로운 향기

[완도의 자생식물] 128. 냉이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12.30 09:59
  • 수정 2019.12.3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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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에 냉이를 캐는 사람을 사랑한다. 이른 봄에 아주 작은 깨알 같은 냉이꽃을 보는 사람을 사랑한다. 저녁나절에 냉이를 캐다가 저녁에 냉잇 국을 끓인 사람을 사랑한다. 그 냄새가 저녁 내내 사라지지 않는 방에서 평생을 같이하고 싶다. 가장 가난한 사랑이 가장 뜨거운 사랑을 낳게 했으니 이것이 가장 위대한 삶이라. 

새싹은 자라고 잎은 커지고 꽃은 또 피고 사람들은 길 위에서 다시 떠난다 해도 따뜻한 눈망울은 변함이 없다. 이런 마음이 산을 만나면 산이 되고 싶고 강물을 만나면 강물이 되고 싶고 바다에 이르면 바다가 되고 싶다. 슬픔을 만나면 슬픔이 되고 싶고 기쁨을 만나면 기쁨이 된다. 마음을 다 비워나니 이것이 나답게 사는 법이라. 냉이꽃 자유로워라. 기쁨이 설움이 되고 설움이 기쁨이 되어나니 삶은 매일 흔들렸다가 꽃을 피운다. 

두해살이는 보통 가을에 잎을 내고 겨울을 난 후 봄에 꽃이 피고 씨앗을 퍼트리는 식물들이다. 냉이, 꽃다지, 꽃마리, 봄맞이, 애기똥풀, 달맞이꽃, 별꽃, 말냉이, 큰개불알풀, 광대나물 등이다. 나물을 좋아하는 이들은 다 아는 야생초다. 여러해살이 풀들은 땅속줄기가 살아서 몇 해를 살아가는 풀들이다. 이들 중에 특유한 흙냄새가 난 냉이는 뿌리에서 향이 더 진하다. 냉이 된장국에서는 구수한 냄새가 합쳐져 고향 같은 향수에 젖어든다. 무엇인가 가득 채우려고 하면 허허롭다. 

욕심을 버리고 비워두면 변하지 않는 것들이 채워진다. 대지의 체온과 속 깊은 여인의 향기가 융합되면 영원히 변하지 않을 같은 또 다른 새로움이 만들어진다. 나물 꽃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결코 서둘지 않는다. 하찮은 꽃에서 무엇인가 발견하고픈 마음에선 희망이 있고 소망이 있고 기다림이 있기 때문이다. 기다림이 많은 사람은 스스로 길을 만들고 들꽃을 본다. 

냉이꽃은 한 겨울에는 잎을 낮추고 봄 길을 기다린다. 내면에서 피고 지는 꽃들은 따듯한 봄 길에서도 나직하게 핀다. 겸손하게 핀다. 그 꽃 위에 지난 바람도 한세월을 겪었다. 진실한 꽃이 되기 위해선 설움의 길을 걸어봐야 한다. 지금도 어디에서가 냉이 꽃을 캐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날이 저물면 그리운 것들이 더욱 그립게 한다. 기쁨과 설움이 교차 되는 날엔 나답게 사는 것이고 하나의 존재로 서게 된다. 

음악은 과학이다. 과학이 마음과 맞닿아 있을 땐 예술이 된다. 냉이 된장국에 듬성듬성한 어머니 마음이 더해지면 전혀 다른 화학반응이 일어난다. 가장 가난한 사랑이 가장 뜨거운 사랑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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