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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의 겨울에 희망의 봄을 얘기하다

[완도 시론] 배준현 / 고금주조장 대표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12.30 10:01
  • 수정 2019.12.30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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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준현 / 고금주조장 대표

-“서서히 좀먹기 때문에 사람들이 죽는 겁니다. 실패를 향해 조금씩 조금씩 밀려가지요. 그들은 서서히 겁을 먹게 됩니다. 저는 무섭습니다. 롱아일랜드 전기회사가 전등을 꺼버릴지도 모르니까요. 아내는 옷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은 신발과 놀이거리가 필요하고요. 게다가 녀석들이 교육을 받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합니까? 매달 내야 하는 고지서와 의료비, 이가 상하거나 편도절제술을 받아야 한다면, 아니 그걸 다 떠나 제가 병이 들어 이 빌어먹을 인도를 쓸지 못하게 된다면 어떻게 합니까? 당연히 어르신께서는 이해하실 수 없습니다. 그것은 서서히 찾아옵니다. 가지고 있던 배짱을 썩어 문드러지게 만들어버린다 이겁니다. 저는 다음 달 내야할 냉장고 할부값 말고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이 일이 싫지만 이 일자리를 잃어버릴까 무섭기도 합니다. 은행장님이 어떻게 이해하실 수 있겠습니까?”

-“당신, 실패한 원인이 내게 있다고 비난하는 거야?” “아뇨. 물론 아니에요. 하지만 난 실패 속에서 뒹굴고 있는 당신을 비난해요. 구닥다리에다가 그 사내답지 않게 나약한 사고를 당신이 버리기만 한다면 그 속에서 나올 수 있어요. 모두 다 당신을 비웃어요. 아무리 위대한 신사라도 돈 한 푼 없다면 무능한 사람에 불과하다고요.” 그 말이 머릿속에서 폭발하자, 그녀는 입을 다물고 부끄러워했다.

-‘엄청난 부 가운데 냉혹함 없이 모아진 것이 있을까? 내가 알기론 전혀 없다...힘과 성공...그것들은 도덕보다 우위에 있고, 비평보다 우위에 있다. 그렇다면 당신이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당신이 그것을 어떻게 하고 무엇이라 부르는지에 달려 있다. 사람들 마음 깊숙이 멈추게 하거나 벌을 내리며 감독하는 어떤 것이 있을까? 없는 것 같다. 실패했을 때만 벌이 가해진다. 사실 범인이 잡히지 않으면 어떤 범죄도 성립되지 않는다. 뉴베이타운에서 일어나는 움직임 속에 어떤 사람들은 피해를 보고, 심지어 누군가는 파멸해야 했지만, 그렇다고 그 변화를 조금도 저지하지 못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존 스타인벡의 <불만의 겨울>에서 간추린 내용이다. 주제는 ‘부패한 사회는 정직하게 살아온 개인을 비도덕적 개인으로 만들 수 있다’는 따끔한 경고이다. 물질만능에 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은 그 삶의 무게만큼 도덕과 비도덕의 경계에서 흔들릴 수 밖에 없다는 내용이다. 주인공 이선 홀리는 정직하게 살아가지만 고지식할 뿐이라며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 생활고로 돈만이 가정을 건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결국 부도덕한 방법을 쓴다. 하지만 풍요로울수록 가족의 부도덕을 보면서 좌절하게 된다. 삶이란 감옥에 갖힌 신세, 이선 홀리가 딛고 다시 일어설 가치는 무엇인가? 

소설의 끝부분에 반전이 있다. 아주 작지만 소중한 것에서 희망이 보인다. 지금은 위선과 속임으로 얼룩진 불만의 겨울이지만 머지않아 올 희망의 봄을 얘기하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읽힌다. 세익스피어의 소설 리쳐드3세의 첫구절 “이제 우리 불만의 겨울은 요크의 태양덕분에 찬란한 여름이 되었다.”에서 제목을 따온 것처럼 불만의 겨울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한 해를 돌아 본다. 마음이 좀 무겁다. 겨울에 내던져진 개인의 불만, 세상은 썩었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온갖 위선과 기만으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아무도 당당할 수 없다. 이선 홀리가 절박함에 내몰려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편법과 위선이 우리의 모습과 겹치기 때문이다.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고 세상은 시끄럽기만 하다. 오래된 고전에서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하는 현실, 2010년대가 저물고 있다. 20년대엔 새로운 희망을 얘기할 수 있을까? 팍팍한 삶일지라도 잘 될 거라는 믿음, 겨울뒤에 봄이 오는 진리와 같이 긍정의 힘으로 버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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