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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 명상(冥想) 훈련

[완도차밭, 은선동의 茶 文化 산책 -94] 김덕찬 / 원불교 청해진다원 교무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12.30 10:02
  • 수정 2019.12.30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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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찬 / 원불교 청해진다원 교무

지금 완도차밭 청해진다원에서는 차와 명상 훈련이 한창 진행 중이다. 일주일씩 하는 훈련으로 여름과 겨울 각각 두 차례씩 한다. 이번이 올 겨울 첫 번째 훈련이고, 올 해 마지막 훈련이며, 한 해를 보내면서 스스로를 점검하는 기회도 동시에 갖는다. 두 번째는 1월 첫 주 월요일부터 훈련이 시작된다. 역시 한해를 설계하고 다짐하는 시간도 갖는다. 이번 훈련을 통해서 차와 선(禪), 또는 차와 명상의 관계 뿐 아니라 차와 선과 명상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정확한 이해와 실습을 통하여 일상속에서의 올바른 차생활과 명상을 활용한 자기성찰의 방법과 응용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운다.

선이라 하면, 동양적인 불교적 수행법으로 매우 전문적이고 너무 어려워 전문 수행자들이나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와 비슷한 용어로 사용되는 단어가 바로 명상이다. 이미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용어이며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고요히 생각하는 것으로 명상의 의미가 이해되고 보편화 되어 있다. 따라서 조용한 곳이라야 하고, 정해진 특별한 방법으로 해야 하며, 수행인이나 특별한 사람들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유행하는 명상법들도 그 종류가 셀 수 없이 많고, 너무 전문적이여서 접근하고 이해하기 어렵다고 여긴다. 오히려 명상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부분이다. 명상에 대한 정의를 쉽게 우리말로 옮긴 단어들 가운데 ‘마음 챙김’, ‘알아차림’ 등의 용어로 많이 회자된다. 그러나 이 용어도 매우 표면적이다. 즉 챙기는 마음과 챙겨야 하는 마음이 있고, 그 마음들은 어떤 마음이며, 어떻게 챙기는 것을 챙긴다 하는 것인가? 하고 물으면 쉽지 않다. 그 마음들의 작용들이 어떻게 일어나고 작용되는가에 대해 면밀히 연마되어 매 순간 경계마다 ‘그 마음의 알아차리기’를 정확하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매 순간 경계마다 작용하고 있는 나의 마음에 대해 알아차릴려면, 알아차리고자 하는 그 마음이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초롱초롱하고 생생하게 깨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항상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잃지 않고 볼 수 있어야 한다. 자기의 식견이나 지식으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정신을 차린다’고 한다. 늘 이렇게 하고자 훈련하는 일련의 과정이 바로 명상훈련인 것이다. 즉, 삶 전체가 곧 명상의 연속인 것이며, 그 마음을 놓치고는 존재자의 본질적 삶을 살았다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삶의 모든 가치관들이 비롯되었다. 그 자리가 바로 우주적 자아와 존재적 자아가 만나는 궁극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상에 대한 정의와 방법을 정확하게 알았다고 하여, 그 세계가 내 것이 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깨달아 안 것은 ‘아, 그렇구나!’ 하는 정도 일 뿐이다. 그 깨달아 아는 바를 충분히 익혀 온전하게 나의 것으로 만들어 나의 생활과 나의 삶을 통해 구현되었을 때 비로소 나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즉 어떤 분야든 관련된 많은 책을 읽고 연마하여 설사 세계적인 권위를 가졌다 하더라도 그의 삶이 그 깨달아 아는바에 바탕하여 스스로 본연적인 삶의 모습으로 실천하거나 살아내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는 것이다. 오히려 묵묵히 실천하는 삶이야말로 참으로 귀하고 소중한 것이며 가장 위대한 삶을 산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실천을 통해 전개되는 세계는 그 존재의 수만큼이나 다양하며, 아울러 각각의 역할과 소명도 각각의 자리에 함께 주어지는 것임도 알 수 있다. 며칠 남지 않은 한해의 마무리를 차 한 잔 앞에 두고 고요히 반조하는 시간을 가져봄은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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