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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한마디가 얼마나 서러운데

[에세이 - 횡간도에서] 박소현 / 횡간도 보건진료소장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0.01.29 14:18
  • 수정 2020.01.29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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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이 울리는데 뜨는 번호가 낯 익는다.
“엄마!” 내가 부르는 인사에 역시나 “워따워따 우리 소장님! 어찌게나 생각나고 보고 자웁고 풋고추 따놓고 보믄 우리 소장님 좀 줬으먼 좋것다 생각나고, 전화번호부에 써 논 번호 들다봄시롱 얼굴 들여다보데 끼 보고 있다 걸었소. 잘 사요? 워따워따 내야 소장님, 언제나 한 번 모도 올라?” 
“그란께이! 횡간도는 땅끝에서 배 타고 와분께 완도를 거의 못 가. 배 탄 대라도 같으면 오다가다 보믄 좋은디. 몸은 요새 어짠가 엄마?”

짧은 안부 전화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엄마는 엄마대로 나는 나대로 콧물을 들이킨다. 이제 전화를 끊어야 한다. 아니 엄마가 울음소리 나에게까지 전해질까 서둘러 끊으려 하시는 순간이 온다. 
다급해진 마음에 “엄마! 사랑하네! 항상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지내고, 꼭 또 만나 우리!” 속사포처럼 말씀드리자, “워따워따 나도 사랑하요 참말로!” 답을 하시며 이미 참말로 단어는 터지는 울음에 흔들리다 딸깍 전화는 끊긴다.

사랑한다는 말, 돌아가신 아빠께 한 번도 입 밖으로 소리 내어서 해 드리지 못한 말이라, 엄마께는 깨달은 후 종종 해드린다. 언젠가 엄마가 그러시더라. 작은 조카 남자아이를 두고는, “그래도 그 작은 놈이 나한테 사랑한다고 전화 끝에라도 ‘할머니 사랑해요!’ 해주지 누가 그런 말을 해주겠어. 나도 처음엔 어색해서 ‘오야!’ 하고 말았다만 자주 듣다 보니 이제는 ‘나도 내 강아지 사랑해!’ 한다.” 참 미안했다. 

어찌 보면 속삭이다 헤어지면 그만인 연인 사이에는 수도 없이 주고받는 말인데, 평생을 일편단심으로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 준 부모님께 그 말씀을 드린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았다. 사랑한다는 말을 입으로 내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문자메시지 말미에 적어 보내니, 엄마는 “미투!”라고 답하셨다.

모도에서 근무하며, 매주 경로당 방문 마을 방송을 하다가, 문득 모도 엄마들은 사랑한다는 말을 얼마나 들으실까 생각이 들어 매일 하던 “감사합니다!” 대신에 “엄마 아빠들 사랑합니다!” 했더니 놀라운 반응이 생겼다. 막둥이 딸랑구 같은 내 궁둥이를 토닥토닥하시며 “사랑해!” 하시기도 하고 편찮으셔서 좀 와달라는 전화 말미에도 그리고 신문에 오른 내 글을 읽고 잘 보았다 전화주셔서도 사랑한다고 먼저 말씀해 주시더라.

내게 가장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해주시는 분은 나를 딸 삼아 주신 해남 시인 아버지다. 한창 힘든 시기에 나를 지켜보며 다독여 주시다가, 아버지라 불러도 되느냐 여쭈니 딸이 없어 한(恨)이 되려 했는데 딸 해주어 고맙다고 하시고는 내 아버지가 되어주신 분. 바쁜 와중에 자주 연락 못 드리면 “우리 딸 식사는 챙기고 일하는지, 춥고 외롭지는 않은지 눈에 밟힌다. 그래도 섬이 된 우리 딸이니, 항상 힘내라. 사랑한다.” 이렇게 응원 문자를 보내오신다. 

실은 어제 남자친구에게 사랑한다고 문자 보냈다가 한 방 먹었다. 식상한 표현이니 글 쓰는 사람답게 표현해보란다. 중년의 나이가 된 우리에게 20대들처럼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않아도 서로 이미 아는 것 아니냔다. 설전을 벌이다가, 두 번 다시는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지 않겠노라 으름장을 놓았다. 정이 시간을 두고 켜켜이 쌓여 미움과 사랑 그리고 믿음 등의 복합적인 감정이 속으로 뭉근하게 자리 잡는 감정이라면 사랑은 아마 현재의 뜨거운 나의 솔직한 감정이자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가 모를지도 모르는 것이므로 말로 수백 번을 한다 한들 어찌 식상하겠는가. 

사랑해! 한마디가 얼마나 서러운데
사랑해 한마디를 못 해본 이로서는
정든 님 떠나고야 가슴에 사무친 말
사랑해 사랑해요! 때 늦은 되새김질
속으로 외쳐봐야 듣기나 하려는지
있을 때 해 줄 것을 이제 와 후회하네
정이야 시간 흐르면 스며들어 쌓일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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