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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검사의 사직

[완도 시론] 박준영 / 법무법인 '새봄' 변호사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0.02.02 18:46
  • 수정 2020.02.02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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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위의 기록이 국민이라고 생각한 검사.
약한 사람들의 목소리에는 혼과 정성을 바친 검사.
명랑한 생활형 검사.

김웅 검사가 사직했습니다. 가슴 아픕니다. 김웅 검사가 쓴 ‘검사내전’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극악한 패륜 범죄를 저지르고도 야심가인 변호사와 탐욕스러운 프로듀서를 만나 마치 무고한 죄를 뒤집어 쓴 것처럼 세상을 호도하는 사람도 봤다.”

여기서 ‘야심가인 변호사’는 바로 접니다. ‘야심가인 변호사’로 정리된 것이 다소 억울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사건을 공론화하는 과정에서 결론을 정해놓고 보여주고 싶은 부분을 강조했습니다.

오해받을만한 증거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위법수집증거여서 법정에서 증거로 쓸 수 없다는 논리로 정당화했습니다. 제가 당사자의 고통에 주목했다 하더라도 사건에 대한 욕심이 지나쳤습니다.

저는 김웅 검사에게 이 욕심을 들켰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이 사건의 실체에 대한 제 판단이 달라진 건 아닙니다만, 김웅 검사의 비판을 늘 되새기며 공정하고 객관적인 공론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 변화의 계기가 된 사건 중 하나입니다.

“저자는 끊임없이 거짓과 싸워야 하는 검사 일을 하다 보니 한때는 사람 말을 믿지 않게 되었을 뿐 아니라 그들을 만나는 게 지겨워지기 시작했지만 다른 인생의 찢어진 틈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꿰매주어야 할 때가 많기에 다시 일의 보람을 느끼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사건 피의자들과 피해자들을 만나며, 범죄 자체가 내뿜는 악에 집중하기보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욕망과 그로 인해 드리워진 삶의 그림자들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저자는 자신이 비록 죄를 다루는 검사라 하더라도 세상사를 단편적으로 이해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검사실에서 마주하는 인생의 파열들이 직선적이고 단편적일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들여다볼수록 다양하고 모순적이기에, 세상의 일들을 직선적으로 추정하지 않고 이야기의 뒷면과 진짜 사연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세상의 약자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과 법, 그리고 두렵고 원시적인 존엄함에 대한 생각들을 마주하게 된다.“

김웅 검사가 쓴 ‘검사내전’을 소개하는 글 중 일부입니다. 김웅 검사는 스스로를 ‘생활형 검사’라고 지칭하며 '현실'을 살아갔습니다. 그의 사직이 안타깝습니다. 우리는 좋은 검사 한 명을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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