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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라대왕님 앞에서

[에세이] 이선화 / 넙도행복작은도서관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0.02.02 18:47
  • 수정 2020.02.02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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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라대왕님 앞에서

“너는 저 세상에서 무엇을 하다 왔는고.”

“아이고 염라대왕님 일만 징허게하다가 왔응게 나잠좀 편한데로 보내주씨요이.”

“이년 살아온 시상이야기 들어볼라요.”

“울 아버지가 어찌나 무지한지 딸년들만 여섯을 낳고 마지막이 아들을 하나 낳았지라. 딸년들은 한나 캘키들 안혀서 눈을 못 떠서 저짝으 저 달력을 걸어만 놨지 읽들 못허니 어쩌크 살았것소 죽어라 일만했지 저 너머 섬세이살때는 자갈밭 돌맹이들만 하루종일 골르고 골라서 밭을 만들고 녹두랑 메주콩을 겁나 심어서 해뜰 때부터 해질 때까지 일을 했지라 어디 그것만 햇간디? 나무로 만든 배 노를 저어서 해우발 뜯을 때는 또 얼매나 추웠는지 손등이 다 터졌지라잉 그렇게 히서 시집이라고가서 좀 편해 질라나 했드만 웬걸 씨엄씨가 어찌나 시집을 살리는지 애기 낳고 사흘만에 나와서 나락찢고 일하고 했지. 그때는 어찌나 배가 고픈지 먹고 뒤돌아서면 배고프고 나락광 쇳대는 씨엄씨 혼자서 가지고는 쌀을 딱 그맨치만 줘. 애기 젖은 뜯기제 배는 고프제 얼매나 서러운 시월을 살았는지 아요. 시방은 좋은 시상이지 좋은 시상이고 말고. 이자는 늙어서 그런지 그렇게 원망 시럽던 친정아부지도 다 잊어지고 그라요. 바닥일 농사일 징허게 일만허다 왔응게 나 잠 좀 편한데로 보내주씨요.”

댕이가 천근 만근 아플때면 어서 염라대왕한테 가면 좋겠다고 하며 오월녀씨가 저승가면 염라대왕님 앞에서 하겠다는 이야기를 병실 식구들이 듣고는 때굴때굴 구르며 웃어댄다. 월녀씨는 묻지도 않은 자신의 병원 이력을 읊기 시작한다. 어깨가 끊어져서 수술했지. 다리무릎 연골수술했지. 대장암 수술했지. 상이군인이지. 바다 일하고 남은 것은 골병 뿐이요. 그럼 아자씨는 어디에 있다요? 어찌 한 달이 다되어가는 병원 생활에 한번도 얼굴을 못본 것 같으요. 옆자리 정자씨가 아픈 곳을 푹 찌른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녀는 태연하게 이야기한다.
“아자씨는 나가 이렇게 병원 생활한게, 혼자서 전복키우느라 얼마나 고생하것소잉.”

허리디스크수술로 허리가 한자나 쭉빠져서 꾸부정하고 다리는 휘어서 걷기도 서기도 불편한 모양인 그녀는 병실 안 사람들을 한바탕 웃기고는 남편 이야기가 나오자 뒤돌아 눕는다. 시집와서 이날 평생에 멋만 부리고 돈만 쓸 줄 아는 남편이야기가 불편한가보다. 입만 열면 오입쟁이 놀음쟁이 아자씨흉이 술술 나올것은디 그리했다가는 벌을 받을 것만 같아. ‘그랴, 나라도 이렇게 중심을 딱 잡아야지 암만’마음속으로 말하고 아자씨이야기는 입에 올리지도 않는다.

이렇게 아무도 병문안을 오지않는 것이 그냥 서운한 것 뿐이다.병원에 있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눈만 감으면 두고 온 바다가 아른거린다. 어서가서 다시마막아야지 미역해서 밥도 줘야지 에구 이 양반이 밥은 먹고 있을라나하는 이런 저런 걱정이 앞선다.

“누구 찾으요”“
이월녀요”“
아 월녀언니요 언니여기 누가 오셨어요.”
깜빡 잠이든 월녀씨는 천천히 돌아누우며 “누구요. 알라 바쁜디 이 양반이 어떻게 왔댜. 바쁜디 뭐할라구 오고 그라요.” 반가움을 표시한다.

말은 왜 왔냐고 하지만 입원하고 한 번도 병문안을 오지않는 어른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고 서운하기도 했는데 반갑다. 그녀는 남편을 어른이라 한다. 어른은 가져온 반찬 보따리를 건네주며 “며느리가 싸주드만, 몸조리 잘햐.”한마디하고는 휙하니 나간다.

참 멋대가리 없기는. 그래도 웃음이 픽나온다. 평생 이렇다 저렇다 말 한마디 없는 양반이 몸조리 잘 하라하니 그동안 서운했던 마음이 다 없어진다. 보따리 안에는 전복장조림 전복죽 짱애국 등이 하나 그득이다. 방안사람들과 그릇을 꺼내고, 담고하여 ‘맛 좀 봐.’ 맛 좀 보랑게 얼라 이거이 뭐랴 전복아녀. 왓따, 맛나겄다잉. 그랴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댜.

“어쨌든, 오래 살아남는 것이 이기는 것이랑게. 이렇게 살아있응게 맛난 것도 먹잖여. 동상, 동상도 이리와 후딱 오랑게.”하며 그녀들은 왁자지껄하게 한 상 거하게 먹으며 염라대왕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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