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완도의 자생식물 139 오얏나무

내 운명의 슬픔이 꽃잎이 되고 너와 나 대면할 때, 가장 깨끗한 슬픔과 기쁨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0.04.03 10:52
  • 수정 2020.04.03 13:11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랑하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온다는데 오늘 하루 내내 꽃만 피운다. 사랑은 오랜 경험에서도 오지 않는데 들판 한가운데 서있는 고목나무에선 새잎 돋나니 세월 흘러도 서러워 할 것 없다.
꽃이 많고 적음이 아니라 가장 외롭고 쓸쓸한 나무가 진정 꽃이 된다고. 많은 꽃 중에 나 혼자만이 바라보는 슬픈 꽃이 있다는 걸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 많은 날 중에 나를 기억한 외로운 날이 있다는 것 얼마나 기쁜 일인가. 그동안 지나온 선한 나무들 사이에서 오직 나의 존재만 확인했을 뿐이다. 나를 넘지 못한 꽃잎과 나를 넘어선 푸른 냄새가 나를 진정 행복케 하는 만남이다. 오직 나와 직면하는 현실만이 기쁨이고 슬픔이다. 오늘 한꺼번에 쏟아지는 꽃잎도 그 속에 내가 없으면 무슨 기쁨이고 설움이 이겠는가.


그는 나도 모르게 내 운명을 움켜잡고 있다. 그것은 먼 경험에서 오는 지혜도 아니다. 내 하나의 운명을 그대만 알고 있다는 걸 오늘 순간 번뜩인다. 어느 날 갑자기 나의 운명이 될 줄이야. 이미 네가 오기 전에 나의 슬픈 운명이 너의 기쁨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그래서 세상은 혼자만을 알아차린다. 4월은 아름다운 계절이다.
그 만큼 눈물도 많다는 것이다. 오얏꽃은 다른 꽃보다 갑자기 다가온다. 그것도 수많은 꽃들로 피어서다. 질 때도 잊힌 듯 보이지 않는다. 꽃과 나와 만남이 이렇게라도 나의 속사정을 알리고 싶어진다. 봄에 꽃이 피는 나무 차례는 매화가 가장 먼저 피고, 산수유, 생강나무, 진달래, 목련, 개나리, 살구꽃, 벚꽃, 배꽃, 자두꽃, 복사꽃, 사과꽃, 철쭉, 영산홍으로 이어진다. 요즘은 기온변화의 원인으로 순서의 관계없이 한꺼번에 피어 댄다. 옛 이름은 오얏나무라고 한다.
자두라는 이름은 복숭아(桃를) 닮은 열매의 색이 붉은 자주색을 띤다고 ‘자도(紫桃)’라 하다가 이것이 변해 자두가 되었다고 한다. 매년 봄이 오면 같은 꽃이지만 다르게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 몸과 마음의 변화에 따라 그때그때 느껴지는 감정도 다르게 되는 모양이다. 오얏나무는 느닷없이 꽃이 한꺼번에 피었다가 갑자기 없어진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자두 열매가 보인다. 다른 작물보다 꽃과 열매의 시간차가 가깝다. 벚꽃은 통째로 한 나무에서 피는 것 같다. 그러나 오얏나무 전체에서 오는 느낌과 가지에서 오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한순간 내 운명의 슬픔이 그 많은 꽃잎 중에 단 하나의 느낌이 되고 만다. 삶의 이전이나 이후는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 오늘 오얏꽃을 바라보는 눈빛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관성의 힘이 아니라 순간 새로운 출발점이 된다는 것을. 그래서 너와 나의 대면하는 순간만은 가장 깨끗한 슬픔과 기쁨이 되고만다..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