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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피고 또 지고

[완도시론] 정택진/ 소설가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0.04.24 13:55
  • 수정 2020.04.27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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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는 인자 연초록 잎사귀가 꽃잎인 양 피어났어라우. 들에는 유채꽃이랑 갓꽃이 형제마냥 노란색으로 얼크러졌고라우. 논시밭의 솔은 벌써 두 번씩이나 비었고, 그 옆에는 다마내기하고 마늘이 밑이 들어가고 있소야. 어머니가 없는 논시밭은, 맨다고 매요마는, 오만 지심들이 시도때도없이 올라오요야. 징하요 징해. 마당캐도 떼보다는 잡풀이 어네이 많으요. 어머니가 집에 없으께 완전히 즈그들 세상이요야.

어머니가 없으믄 봄도 안 오고, 꽃도 안 피고, 그러니 마당캐고 된이고 카칼할지 알었든만 그거이 아니요야. 엄니가 여기 없어도 때는 때대로 왔다가 가고, 그 때 따라 풀이나 나무 즈그들은 즈그들대로 폈다 지고, 사람들은 또 아무 일 없는 듯 다 저저금의 하루를 사요야. 그것이 사람살이인갑소야.

봄이 아직 오기 전에 쓰러지셨으께 엄니가 병원으로 들어간 지도 그새보 일년이 넘었소야. 그 동안에 잎이 무성해졌다가, 그 잎들 낙엽으로 졌다가, 북풍한설에 어디론가 날려갔을 것이것제라우. 그라고 봄은 또 오고 잎들은 저라고 푸르름을 향해 자라고 있소야. 저 잎사구가 어디 작년 그 잎사구것소마는 어채 그란지 내 눈에는 작년 그 잎사구처럼만 생각되요야. 엄니도 보고 나도 봤던 그 잎사구처럼만 보이요야.

아마 오월쯤이었것제라우. 어뜬 어멈들은 음식을 장만하고, 어뜬 어멈들은 두엇씩 이리저리 어울려 다니고. 그러다가 그날이 되면 모두가 한복을 입고 귀샅을 오가는지라 온 동네가 오색 꽃들로 만발했어라우. 맨날 산으로 들로 허덕이던 어멈들이 그날만은 모두 봄꽃이 되었었제라우. 인철이즈검무는 장구를 맸고, 다른 어멈들은 뭔가를 이고 봄이 와 있는 골기미재로 올라갔어라우. 골짜기에서는 하루종일 창가소리가 들이고, 애들 몇몇이 골짜기 가까이 올라갔다 왔제라우. 어뜬 어머들은 술도 두어 잔 했을 것이고, 어뜬 어멈은 봄에 취해 비틀거리기도 했을 것이며, 어뜬 어멈은 가는 본날이 애드러워 훌쩍이기도 했것제라우. 저녁이면 가까운 어디에서 노랬소리가 들려왔어라우. 그 소리 따라 귀샅을 더듬으면, 그곳은 마당이 넓은 영실네집이었어라우. 마당 가운데는 장작불이 타올랐고, 오색으로 차려입은 동네 어멈들은 마당을 돌며 장구소리에 맞춰 박수치고 노래를 부르며 산다이를 했제라우. 타오르는 장작불에 비친 어멈네들의 뺨은 노을을 맞은 듯 붉디붉었었제라우. 대새이를 넘어온 밤과 함께 어멈들의 노랫소리도 깊어갔어라오. 당신들의 ‘봄놀이’였제라우.

세월은 흘러 그때 장구를 매고 산에 올랐던 숙모도 지금은 떠나갔고, 그때 마당을 노랫소리로 마당을 돌던 숙모들도 지금은 많이들 없소야. 엄니는 병원으로 떠난 지 일 년이나 되고. 사는 일이 다 그리 진행된다는 걸 암시로도 새끼 된 마음이 또 그렇지가 않으요야. 봄은 와 꽃은 피고, 산에 피어 있는 싹꽃들은 저렇게 푸르러 가는데, 마음은 이리도 쓸쓸한 것이 단지 엄니를 병원에 두고 혼자 있는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 싶으요야.

어머니, 모두가 가는 길이고, 또 모두가 가야 하는 길이기는 하제마는, 마지막 가는 길의 모습이 옛날과는 다 달라졌제마는, 그래서 엄니를 거기 모셔두고 있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들 말은 하제마는, 나는 낳아준 엄니를 거기 두고 있는 이 마음은 꽃을 보며 흘리던 그때의 어느 숙모 같기만 하요야. 꽃이 피는 이 봄날에 쓸쓸한 것이 어찌 제 혼자뿐이것소마는, 금년의 봄은 어쩔 수 없이 그렇기만 하요야. 사랑하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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