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차별

[완도 시론] 박준영 / 법무법인 '새봄' 변호사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0.04.30 19:14
  • 수정 2020.04.30 19:19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때 방황은 했지만, 공부를 잘해서 꾸중보다 칭찬을 더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그리고 그리 늦지 않은 나이에 변호사가 돼서 일찍부터 대접받고 살아왔습니다.

언제부턴가 이름이 알려져서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어딜 가든 은근히 배려나 호의를 기대합니다. 홍어집에 막걸리를 먹으러 갈 때도 어김없이 주인장이 ‘애 또는 코’를 내올 것을 예상하죠. 그래도 테레비에 나오는 변호산데... 저는 제 사정을 자상하게 설명하고 변명까지 하는 ‘먹물’이기도 합니다.

한편, 어쩌다보니 이런저런 사건을 변호하면서 가난한 사람,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좀 만났습니다. 이들은 본인의 억울한 사정을 이야기하는 데 서툴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답답했지요. 설명을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지만,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변명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이 경험한 일화로 ‘변명을 포기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대전교도소에 있을 때 화장실 문이 잘 닫히지 않아 자전거 튜브를 가운데 끼워 놓았다고 합니다. 이런 문은 고무의 탄성 때문에 조심스럽게 잡고 닫아야 소리가 안 나는데, 한밤중에 문을 쾅 닫는 사람이 있었다고 하네요.  이 사람은 아침마다 같은 방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핀잔을 들었고, 신 선생님은 답답한 나머지 도대체 왜 그러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이전에 남의 집에서 물건을 훔치다가 발각되어 도망가던 중 축대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쳤고 그때부터 쪼그렸다가 일어나면 마비가 되어 늘 문을 놓친다는 것이었습니다.

신 선생님이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그 사정을 얘기하고 양해를 구하라”고 했더니, “없이 사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사정을 구구절절 다 얘기하면서 살아요? 그냥 욕먹으면 사는 거지요.”라고 했다네요. 사람들이 짧은 이야기도 끝까지 들어주지 않고, 말한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는 것을 경험해 왔기 때문에 입을 닫게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떤 이는 늘 배려와 호의를 당연시하면서 기대합니다. 그리고 자기 사정을 구구절절 이야기하면서 삽니다. 반면, 어떤 이는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어려움조차도 얘기하는 것을 단념하고 삽니다.

늘 호의를 기대하는 나를 바꿔보자. 적어도 제가 변호를 맡은 사건에서는 말이 서툴어도 본인이 직접 이야기할 수 있게끔 하자. 이 평등하지 않은 사회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이겠다는 생각을 언제부턴가 갖게 됐습니다.

“판사 아들이면 이랬을까”
기사 제목이 좀 쎕니다. 저는 이 나름의 분노를 기자한테 처음 한 게 아닙니다. 이 사건은 경찰이 14, 15세의 아이들(한 명 17세)에게 저속한 언어, 강압적인 어투를 사용하여 모욕감과 수치심을 갖게 한 사건입니다. 여기에 일부를 옮기기도 힘들 정도입니다. 말도 안 되는 수사라고 지적했더니 1심 판단이 이랬습니다.

“원고들의 나이 또래의 일반적인 성적 호기심이나 성적 발달정도, 이성관계 등을 고려할 때 수사기관이 조사과정에서 사용한 성기 및 성행위를 지칭하는 속된 표현들은 효율적인 신문을 위하여 원고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법률적 용어를 대신하여 선택된 것으로 보일 뿐 원고들에게 모욕감 또는 수치심을 유발하기 위하여 일부러 저속한 표현을 썼다고 볼 수 없고, 소년의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범죄사실을 추궁하는 과정에서 다소 격앙된 표현이 나올 수 있다”

기가 막혀서 항소장을 제출하며 판사의 이 차별적 시선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 황당한 판결은,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될만한 ‘판사의 과실’이라 할 것입니다. 원고들 나이 또래의 내 자식 또는 내 가족, 친족이 이런 수사를 받았어도 효율적인 수사 운운하며 수사를 정당화할 수 있는지 심히 의문입니다.”

제가 당시에 다소 감정적으로 대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때는 물불 안 가릴 때입니다. 지금은 애가 셋이어서 그리고 맘도 약해져서 참을 것 같습니다.

사법 불신을 조장하는 행태에 대하여 비판적인데, 이 글이 제 의도와 달리 같은 방향으로 읽혀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너무나 존경하는 훌륭한 판사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위와 같은 판단을 한 판사도 그 후 경험으로 지금은 약자에 대해 다른 시선을 갖고 있을 수 있습니다.

춘풍추상(春風秋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춘풍처럼 부드럽게 하고 자기 자신에게는 추상같이 엄격하게 하라는 겁니다. ‘차별’을 줄이는 실천의 논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집 앞 호프집에서 한 잔 하고 가렵니다. 제가 가면 늘 챙겨주는 ‘멸치’를 기대하지 말아야겠지요. 그렇다고 안주를 안 시키는 게 아닙니다!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