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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체험 삶의 현장

[에세이 - 횡간도에서] 박소현 / 횡간도 보건진료소장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0.04.30 19:22
  • 수정 2020.04.30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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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레 전화벨이 울리더니 주민분이 얼른 잠바 입고 선착장으로 후다닥 나오라신다. 응급환자라도 생겨 나 모르게 119 신고하시고 해경정이라도 오나 싶어 양말도 신지 않고 나갔다. 서둘러 나를 배에 태우고는 횡간도 끝자락까지 간다. 환자를 찾는 나의 시선과는 달리 주민분들은 평온하다.

이 밤에 왜 나를 배에 태운 건가 의아해하며 반짝반짝한 별이 수도 없이 보이는 밤하늘을 쳐다보는 동안 어느덧 그물을 걷어 올리고 자루를 푸니 불빛에 밤하늘별이 무색하게 금빛 은빛 내며 고기가 쏟아진다.

입이 떡 벌어지는 찰나 삽자루를 쥐여주시며, 서둘러 먹을만한 생선을 건져 담고는 “뭐하요? 삽자루를 쥐었으먼 퍼야지라우!” 하며 퍼덕이는 여린 전어들을 다시 바다에 방생한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도 삽자루에 전어를 쓸어 담아 ‘꼭 살아라! 많이 자라라!’ 하며 네다섯 번을 배 밖으로 날리니 허리에 통증이 아릿하다.

갑(甲) 중의 갑, 건들먼 쏴벌랑께 갑오징어!
워메워메 껄떡인 척 숨어 컸는디 잡혀붓네, 팔보다 긴 농어.
썩어도 준치라고 나도 준치!
내 비늘은 은색이 아니고 원래는 금색인거 몰랐지? 하는 병어.
배를 부풀리며 눈을 부라리는 복쟁씨에
점잖은 척하던 돔도 퍼득퍼득 뛰는데
망연자실 부른 배로 튀도 못하는 녀석이 아귀더라!

“소장님! 삽자루 푸다 생선 보이먼 광주리에 띵기쑈!”하는 소리에 수사반장이 되어 손바닥만한 쥐치까지 거둬 담는다. 한 시간여를 씨름하며 갑오징어를 해수 담은 광주리에 살리고 삽으로 전어 퍼내다 배 바닥 청소까지 하고 나니 다시 선착장이다.

옷은 젖을 대로 젖어 비린내를 어찌하나 슬며시 걱정이 들기도 하는 순간, 주민분들이 배에서 내려 주시며 생선 광주리를 건네주신다.

“소장님, 기도했소? 오늘은 농어에 갑오징어에 평소보다 훨씬 많이 들었소야. 일당인께 받으시오.” 손사래 치며 괜찮다고 거절하는데 큰 농어 한 마리는 탐이 나서 눈길이 머문다. 아빠 제사에 올리고 싶어서.

“주말에 몇 달째 집에도 못 가고 엄마 젖도 먹고 재필거인디, 큰 놈은 급랭했다가 집에 행사 때 쓰고, 자잘한 놈들은 반찬 해잡숴. 그라고, 아까 아귀찜 좋아한다 했은께 아귀 배 갈라 보씨오. 그 안에 전어가 몇 마리 들었는가! 빈 놈도 있고 여럿 든 놈도 있을 거인디, 다 그놈들도 사는 동안은 즈그 나름으로 열심히 살았을 것이오. 걍 이라고 살제 어차것소! 많이 먹으나 적게 먹으나 언젠가는 가는 인생, 고맙소! 우리 주민들이랑 이 시국에 있어 줘서!”

엊그제 동네 어머니 댁에 초상이 났다. 아버님이 도시 요양병원에서 일 년 넘게 생활하시다 돌아가신 것이다. 올해 초 진료소에서 상담하실 때 울먹이며 “우리 영감 있는 병원 가차이에 방 한나 얻어가꼬 끼니때 되먼 가서 밥이라도 입에 넣어주고 그람 좋을건디 맘이 안 놓이요.” 하시자, “엄마! 엄마 몸도 아픈데 그럼 엄마가 너무 힘들어져서 안 돼. 아빠 잘 계시겠지 믿고 자식들이랑 한 번씩 가서 얼굴 보고 오고.” 내가 다독였던 엄마다.

코로나19 때문인지 도시 장례식장에도 못 가시고 어머니 혼자 집에 계셨다. 주민분들이 모두 어머니 댁에 가서 밤낮으로 위로하며 함께 계셔주셨다. 왜 장례식장으로 어머니가 안 가셨는지 의아해 하자, 주민분이 “연세가 많은 분들은 원래 돌아가셔도 안 가시기도 한다요. 부부여도.” 좀 이해가 안 가기도 했지만, 어쩌면 평생을 의지하며 살아온 짝을 먼 곳으로 먼저 보내며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신 건가 혹여나 충격으로 쓰러지시기라도 하면 큰일인데 오히려 나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보건지소에 근무할 적에 알던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나는 또 다른 섬에 사는지라 인사드리러도 못 가고 속으로 기도만 드렸다.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며칠 사이 여러 어른의 부고를 접하니 최근에 내 표정이 어두웠나 보다. 한밤의 체험 삶의 현장은 이런 우울한 나를 위해 동네 어른들이 마련한 나름의 깜짝 이벤트였다. 얼른 코로나19가 끝나고 아버지 제사에 큰 농어 올리고 “아빠! 우리 주민분들이 아빠 드리래.” 하며 자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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