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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보다 귀한 생명

[에세이 - 횡간도에서] 박소현 / 횡간도 보건진료소장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0.05.22 10:57
  • 수정 2020.05.22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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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2시! 신데렐라의 호박마차가 굴러가기 전, 혹은 엄한 집안의 통금시간이 아니라, ‘너의 수면을 허락하노라! 횡간도 이상 없음!’ 하는 나에겐 꽤나 달콤한 수면시간의 시작이다. 불을 끄고 가까스로 잠 들려하자 061-553으로 시작되는 번호의 벨 울림. 한 번의 벨 울림엔 번호를 보고 두 번, 세번이 되면 두렵기도 하다. 더 이상 망설이면 죄악이라는 느낌이 들어 통화 버튼을 누른다. “소장님! 가심이 답답해 죽것소. 뭣이 맥혔는가!” “끊어, 엄마 일단!” 나의 답에 황당해 “예?”하자, “엄마가 걸어서 못 오자나. 내가 집으로 갈라니까 언능 끊으라고!”답을 듣고는 그제야 끊는다.

머릿속은 백팔번뇌가 시작된다. 이 시간에 전화할 엄마가 아닌데...벗어두었던 옷가지를 서둘러 챙겨 입고는 진료소 가깝게 사시는 배 가진 주민들께 전화를 돌린다. 트럭에 잠시 앉은 1-2분의 순간에 살포시 삼일 연속 같은 꿈을 꾼 것이 생각난다. 로또 사야 하는 꿈이었는데... 낚시를 좋아하는 내가 횡간도 와서는 통 못 했다. 

그게 원통했던지 마을을 걷노라니 절벽 아래 바다 꽤 얕은 물에 광어며 돔 여러 마리 아주 큼지막한 녀석들이 노닐기에 저 깊이라면 손으로도 잡겠다 싶어 그 곳으로 내려가 맨 손으로 물에서 그 녀석들을 걷어 올리니 한 마리가 뭔고! 두어 세 마리가 모래밭으로 패대기쳐지는 환희라니! 때도 아닌 꿈 되새김질을 하다가 그 어머니 집에 다다랐다. 머리에 물수건을 얹고는 초저녁부터 답답한 가슴에 한 숨 자면 나아질까 자고 났더니 좀 나아진 듯하가 또 뭔가가 걸렸다 하신다. “어릴 때도 한번 이랬는디 우리 숙모가 머리에 물수건 해서 목까지 쓸어 내려준께 거짓말 같이 나았단 말이오. 알약 하나 있으믄 주시오”

평소 약을 많이 드신 분이라 속쓰림 증상과는 구분이 확연한지라 시간을 끌 이유가 없었다.
119에 신고하고 도시 병원으로 가셔야 한다 설명드리고, 자식들 전화번호 달라하니 병원에 안가고 버티시겠다고 우긴다. 이쯤되면 강하게 속칭 “딜”을 쳐야 한다. “엄마! 지금 여까지 온 마을 청년들 안보여? 지금 12시 넘었는데 엄마발로 걸어서 갈 수 있을 때 안가고 더 힘들어지면 어떻게 할 거야? 내일 저 젊은 사람들 다 일 가야해. 엄마 때문에 밤에 계속 기다려야 해? 그리고 자식들 전화하면 놀라지... 그런데 만약에 엄마가 시기 놓쳐서 만에 하나 안 좋은 상황이 되거나, 병원에 가서도 연락 안 하면 자식들이 고마워 할 것 같아?

엄마는 엄마 도리가 있지만, 자식들은 다 자식들 도리가 있어. 얼마나 더 미안해지고 서운하겠어! 옆에 같이 못 사는 것도 미안한데 아플 때에도 모르게 갔다고 하면.“ 그제야 주섬주섬 신분증이며 휴대전화를 챙긴다. 저장된 번호 1번을 누르자 멀리 사는 딸이 받는다. 

상황 간략히 설명하고는 바로 어머니를 동네 주민분들 배에 태워 해경정에 접안해 육지 병원으로 이송했다. 어머니가 땅끝에서 내려 119 구급차를 타고 도착하실 병원 응급실에 사전 연락하고, 보호자인 딸에게도 상황보아 상급 병원으로 전원 가실 수도 있으니 병원 측에 연락 유지하며 조심히 내려오시라 전화드리고 하다보니 두어 시가 넘어간다. 아침에 혼자 지내는 엄마께 무탈했는지 안부전화 한 통을 뜬금없이 드리고는, 동네 어머니 이송했던 병원에 전화드려보니 상급병원으로 전원 가셨다 한다. 

오후 무렵 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어제 전화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어머니는 심장 혈관이 많이 막혀서 오늘 한 번 뚫고 며칠 있다 한 번 더 하고 가셔야 한다네요. 로또랑 바꾼 동네 어머니 생명이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큰 거짓말이 뭔 줄 안다. “아이고, 늙어서 죽도 안하고 어차까이! 언능 죽어불믄 좋것네!” 딜 칠 때 한마디 더 했던게 뭔 줄 아는가? ”엄마! 맨날 이르케 온 사방이 아프고 죽어불믄 좋것다 하제? 그럴라믄 전화도 안해야지. 엄마 전화 받었으니까 나는 이대로는 안 가. 엄마 꼭 살릴란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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