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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가 그 손디?

[완도 시론] 정택진 / 소설가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0.07.03 11:30
  • 수정 2020.07.03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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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야, 나 소 바꾸로 가네이. 더 튼실한 놈이 있어야 내년 농사를 짓것구마.”
거칠이는 정지에 있는 아내에게 말하면서 소를 끌고 집을 나선다.
아내는 소를 바꾼다는 말이 좀 뜬금없기도 하고, 정이 든 소를 끌고나가는 것에 좀 섭섭은 했지만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말에 그런갑다 했다.
장판 한쪽에 있는 우시장에는 소들로 북적인다. 하지만 거칠이의 눈에는 자기네 소보다 나은 놈은 없어 보인다. 실제로 그랬는지 거칠이네 소는 금방 팔렸다. 거칠이는 소 판 돈을 안주머니에 넣고는 주막집으로 향한다. 아침밥도 거른 채 사십 리 길을 걸어온 탓에 배도 고프고 목도 컬컬했다. 소도 금사를 잘 받아 기분이 좋아진 거칠이는 국밥에다 막걸리까지 서너 잔 곁들였다. 잔돈을 내미는 주모의 손을 뿌리치며 거칠이는 주막을 나섰다. 이제 집에 끌고갈 소만 사면 되었다.
우시장에는 아직도 소들이 많았다. 많은 소들 중에 유난히 건강해 보이고 털이 윤기가 자르르한 놈이 거칠이의 눈을 사로잡았다. 
‘저놈 기가 맥히구마. 근디 어째 저런 놈이 안직도 안 팔리고 있으끄나? 이상하네이. 요새사람들은 소를 볼 줄 몰라야.’
거칠이는 소 판 돈에 돈을 더 보태고 웃돈까지 얹어 얼른 그 소를 샀다. 거칠이는 기분이 더 좋아져 막걸리를 서너 잔 걸치고는 비틀대며 집으로 향했다. 소는 거칠이의 두어 발짝 뒤에서 얌전하게 따라왔다.
‘아따 이놈 튼실한 데다 순하기도 하구마이. 이라고 좋은 놈을 그 금사로 샀으니 오늘은 운수가 대통한 날인갑서야.’
흡족한 마음에 거칠이는 슬쩍 뒤를 돌아본다.
그런데 더한 일이 벌어졌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소가 욍을 찾아들더니 제 집인 양 바닥에 터억 눕는 것이 아닌가.
‘아따, 이 놈이 튼실하고 순한 데다 영리까지 하구마이. 내가 오늘 횡재를 했네라.’
거칠이는 기쁜 마음이 넘쳐 아내를 불렀다.
“어야, 우리 횡재를 했구마. 새로 끄꼬온 놈이 튼실한 데다 겁나 순한데, 영리하기까지 한단말여. 집을 들어오더니 인자 욍으로 찾아든단 말여.”
토방에 앉아 담배를 붙이는 남편을 보며 아내가 말한다.
“역시 이녁은 물건 고르는 눈이 보통 아녀라우. 내년 농사는 아무 걱정 없것소이.”
아내는 외양간으로 다가가 소를 내려다본다. 찬찬히 소를 들여다보던 아내가 머리를 갸웃거린다. 
‘그럴 리가 없는데?’
아내는 다시 뚫어져라 소를 살펴본다. 아무리 보아도 지금 외양간에 누워 있는 소는 자기 집에서 키우던 소였고, 장에 나가 팔겠다며 아침에 남편이 끌고나간 소가 분명하다.
“거칠이 아부지, 이 소 우리 소 탁은디.”
아내는 남편을 향해 소리쳤다. 
“뭔 새퉁빠진 소리여! 우리 소보듬 어네이 비싸게 주고 산 건디.”
“오매, 진짜란 말이라우. 이녁이 아침에 끄꼬나간 그 소가 지끔 쩌기 노꺼 있구만은.”
아내는 혀를 끌끌 차며 정지로 들어간다.
“이 여자가 노망났으까. 소 폰 놈에다 얼마를 보탰는데 어만 소리여.”
남편은 미심쩍은 듯 고개를 갸웃대며 외양간으로 다가간다. 그러고는 뚫어지듯 소를 쳐다본다. 소는 뭔 일인가 싶어 눈을 크게 뜨고 거칠이를 쳐다본다.
“워매, 진짜로 그런갑네라. 참말로 아침에 끄꼬갔던 그 소 탁해야.”
소가 머리를 끄덕이더니 입을 오물거리며 새김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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