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나는 어떤 숨을 쉬고 있을까

[에세이] 최정주 / 재경향우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0.07.24 10:37
  • 수정 2020.07.24 16:25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그만 숲길,
혼자 걸을 때는  여유롭다.

조금씩 채워져 가던 야트막한 산 허리에  어느 새, 초록이 메워져  가리움으로  그리고,아름다움으로 변신해 있다.  내  깊은 내면으로  훅 들어와  숨을 천천히 쉬어보라 한다. 가장 이상적인 호흡법은, 느리고, 편안하게 한다고 했지만, 무엇이던지 빠른 시간에, 최대한의 성과를 얻어야 하는 현대인들에게는, 숨 쉬는것 마져도, 마음대로 되지를 않는다. 어쩌면, 삶의 기초부터가  잘못 시작된다고 할까. 


숨 가쁘게 살아가야 되는, 숨 쉬는 것 마져도 마음대로 안되고, 깊은 한숨으로 메워야, 안정된 호흡으로 심신(心身)이 보충된것이라면,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은, 바른 것일까. 언제까지, 쉼 호흡으로  안정된 심신을 유지해야,  유한인 생명의 연장이 이어지는가 생각해보면 뭔가는, 바꾸어야 되는 게 아닌가 싶다. 

계절은 한 여름이나 다름없는데, 지나치는 쌩한 바람이 차다.  그리고, 언뜻 비춰지는 얼굴 표정은, 가히 섬찟함이다.  남의 눈에는 보이나, 자신의 눈에는 보여지지 않는 인간사의 참 모습.   어쩌면  우리는, 자신의 표정을, 확인 하기가 싫은지도, 두려운지도 모른다.

그러는 동안, 나의 복식 호흡도,  잠깐의 여유로움에서  가슴으로만 호흡하는, 흉식 호흡으로 복귀해 버렸다. 들숨인지 날숨인지, 그냥 숨 쉰다. 좌, 우를 둘러보던 그 잠깐의 여유, 어색함마져도 가는 길만 뚫어져라 응시하고 초록을 배신해 버렸다.

호흡.
짙은 푸름에,  아름다운 꽃길로 이어진  뒷산의 18리 길에,  숨 가쁜 호흡을 내려놔 본다. 지나는 이 보이지 않게, 아랫배를 크게 들이 마시고, 가느다랗게 날숨을 내쉬어, 편함을 느껴본다. 너무나도 소중한 자신의 생명 줄인 들숨,날숨도 어떻게 호흡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여기까지 와 있었다.

계절이 주는,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과 생명이 주는 고귀함이, 새롭게 다가와  눈앞의 것을 보라한다. 그것에 감사하라 한다.  푸르름과 황량함  그리고, 보여지는 자체를  자신과 동일시하라 한다. 아주 작은것에 감사하고,  늘 혼자가 아니라는 가르침,   스승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묵묵히 그리고, 말없이  행동으로 보여주고  그 길을 가는 자연은  참으로 위대한 스승이 아닌가.

자연.
누구는 건강하려고  어떤 이는, 더 나빠지기 전에 건강해지려고 산에 오른다. 걷는 시간대는 똑 같지만,  각자의 사연과 이유는 나름의 차이가 있다.

피폐해져가는 현대 사회의 각박함이 오히려, 도시 사람들을 산으로, 자연의 곁으로 가게 하는지도 모른다. 갇혀진 공간의 초월, 싱그런 호흡이 가능하고 거기에는, 불협화음이 없고,  잠시 내려놓은 여유로움이 있다. 도,농(都農)의 구분이 없는 시대가 된지 오래다.   

고향 주변의 산에도 임도(林道)와 더불어, 산책길이 조성되고, 운동할수 있는 시설과 장소가 활용중이다.  현대 산업 사회의 삶의 행태는, 과거로의 회귀는 불가능한 지금의, 현실적 오늘을 살아야 된다면 도시, 농어촌 구분없는 고단한 일상은, 삶의 여유  즉, 호흡을 여유롭게 하라는 과제를 주고 있다.

한번쯤은, 그리고 지속적으로  들숨과 날숨을 깊게 마시고,  길게  내 쉬라는 지혜를 가르쳐가슴에 손을 얹어, 자신이 어떤 숨을 쉬고, 오늘을 사는지 확인해보자. .  한숨 소리가 아닌, 기쁨의 탄성이 솟는 아침이 시작되고,  숨 가쁘지 않는 오늘이기를 소원해 보자.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