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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일 ‘망산’의 본래 이름은 ‘송봉산’이었다

우리 산 이름 찾기의 의미와 중요성 그리고 추진배경 / 완도문화원 제공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0.08.21 17:28
  • 수정 2020.08.29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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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표기된 평일도(금일읍) 송봉산

일제는 1915년에서 1918년 동안에 집중적으로 전국에 토지조사 및 전국 수탈 조사사업이 진행했다. 완도에서 일어난 식민 지배를 위한 지명변경, 약탈을 위한 조사사업의 몇가지 예를 들어보면 1915년에 완도 장좌리 삼층석탑도 일본인 도리이 류조에 의해 직접 완도를 방문 조사하여 제4차 사료조사를 조선총독부 차원에서 진행했다.

장좌리 삼층석탑은 통일신라말부터 고려초까지의 장보고시대 이후를 조사할 수 있는 중요한 기록이지만 제자리에 없고, 이렇듯 역사적 흔적들이 일제시대에 집중적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일제는 우리나라를 천황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 산이름을 바꾸거나 쇠말뚝을 박기도 했다. 최근에 이름을 되찾은 완도의 주산 ‘상왕산’을 일제가 ‘상황산’으로 바꾸어 버렸듯이 전통 역사기록들이 사라지거나 왜곡, 지명 등을 바꾸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전개했다.

금일 ‘망산’은 1915년 이전 140년 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송봉산’으로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금일(평일) 송봉산은 전선, 조운선을 만드는 소나무를 생산하는 산으로 호국방위를 위한 중요산 산으로 관리되어 왔다.  왜 망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을까?

봉수대를 관리하던 망산인 다른 지역의 서망, 동망, 남망산 등과는 다르게 금일읍(평일)은 왜구를 무찌르고 감시하기 위한 봉수대가 설치되거나 운영된 적이 없다.  

국가가 관리하던 봉산은 북쪽에서는 소나무를 생산하여 궁궐들을 짓는데 사용하였다면 해안지역에 위치한 금일읍은 송봉산에서 소나무를 생산, 운영하여 전선, 조운선을 짓는데 관리됐다. 함부로 소나무를 베거나 개인적으로 쓸수가 없으며 엄한 처벌을 받았다. 금일 송봉산은 국가가 관리하던 봉산 중의 하나이다.

금일 망산의 지명은 1910년도 일제가 금일읍 섭도에 설치한  무인등대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완도 소안 자지도(당사도)에 1909년에 일제는 무인등대를 설치하였고 이후 당사도 등대습격 항일운동이 일어났다. 1년 후 1910년에 연이어 금일 섭도에 무인 등대를 설치하여 완도지역 일대 조선침략의 항로를 확보하고 감시하는데 활용했다. 

금일 섭도를 비롯하여 완도의 주요섬을 관망할 수 있는 금일 송봉산은 일제 무인등대를 비롯하여 완도 주요섬의 항로와 해안을 감시할 수 있는 식민지배를 위한 망을 보는 산으로 망산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이유로 완도 금일읍 망산은 원래의 이름인 송봉산으로 산이름을 찾아 호국을 위해 전선을 짓고 나라의 방위를 위해 노력했던 완도 금일 읍민들의 명예를 찾게 해야 할 것이다.

또한 234.5m로 높지는 않지만 주변 섬들을 모두 둘러 볼수 있는 좋은 전망을 가진 금일읍을 대표하는 산이지만 표지석이나 안내판이 없는 것이 아쉬워 이번 기회에 설치계획을 세워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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