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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멀리, 마음은 가깝게

[에세이] 박소현/ 횡간도 보건진료소장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0.08.28 11:43
  • 수정 2020.08.31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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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들

 

​바다 건너 바람 실려 날아왔을까

태초에 이 자리서 지고 피기 거듭했을까?

 

​어느 따사로운 날

만개하는 꽃 사이에 길쭉한 자태로

고동색 얼굴 매끈하더니

이 꽃 저 꽃 다 져가고

호박꽃만 가까스로 둥근 새알 빚을 때

온몸이 만신창이 여기 툭 저기 툭

바람에게 얻어터졌나!

 

​바람 한 점 없는 순간에도

참새떼 다녀가면 여기 툭 저기 툭

툭툭툭툭 소리 내다 색도 없는 꽃이 핀다.

바람의 색이런가

햇살의 색이런가

 

​요리조리 흔들리며 풍성해진

꽃도 아닌 꽃을 피우는 운명이여!

그래도 너

가장 아름답다!

영원히 피고 질 너의 운명이여!

 

​ 나의 작은 창밖에서 바람도 파도 소리를 따라낸다. 속절없는 부들은 요리조리 흔들리며 그 바람을 다 겪는다. 풀처럼 얇아 피하기라도 쉬우면 좋으련만 둥글고 길쭉한 얼굴은 다 피하지 못해 부르르 떨린다.

힘든 나날이었다. 청정지역 수도답게 아직 우리 완도군에 확진자가 없던 터라 도시 사는 사람들은 요즘 막바지 휴가처로 완도를 일 순위로 꼽는다. 건강하게 왔다 건강하게 가면 좋으련만 종종 우리 군민들 애간장이 철렁하게 되는 순간도 마주한다.

내가 사는 횡간도는 인접 생활권이 노화여서 더 민감하다. 배가 두 번 왕복하여 종착하는 해남 땅끝은 버스노선 마저 대부분 없어져 병원 방문도 쉽지 않고 그나마 택배를 보내거나 장을 보러 다니던 노화마저 문제가 생긴다면 이곳은 그야말로 외딴 섬이 되어버린다. 한글 교실도 코로나19 거리두기 격상 단계에 따라, 오랜 방학과 짧은 개학은 반복 중이다.

몸은 멀어도 마음이 가까우면 우리 서로 함께 걷는 것 아닌가? 올해 조용히 소박한 휴가, 집에서 휴식하기로 하고 다른 이를 배려하여 성대한 휴가는 미루자. 청정지역 수도, 가보고 싶은 섬, 매일 식탁에 풍성한 해산물과 건어물을 제공하는 우리 완도를 이번 여름 많이 아껴 두시었다가 코로나19가 종식될 내년 해조류 박람회에 오셔서 마음껏 즐기다 가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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