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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포기하지 않았을 뿐...

[에세이 - 횡간도에서] 박소현 / 횡간도 보건진료소장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0.09.04 14:30
  • 수정 2020.09.07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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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도록 세차게 퍼붓는 비와 계속 문을 두드리는 바람 때문에 결국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이런 날에는 응급환자가 생기지 않기만 간절히 바라게 된다. 119에 신고한다 한들 해경정도 올 수 없고, 응급헬기도 마찬가지니 그저 간절함으로 비는 것밖에 할 수 없다.

‘10년 만에 식물인간이던 그녀를 깨운 한마디’라는 동영상을 보다가 문득 옛날 일이 떠오른다.

평소 무거운 짐을 나르는 일을 많이 하던 분인데 쓰러져 119로 실려 왔다. 검사를 진행하니 뇌출혈이었다. 출혈을 일으킨 부위가 좋지 않고 양도 많아 신경외과 전문의 선생님이 보호자께 결과를 설명해 드리며 큰 대학병원으로 이송시켰다. 그런데 저녁 무렵 다시 내려오셨다.

“수술해도 가망 없다고 그냥 내려가라네요.”

보호자의 풀죽은 목소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했다. 밤이 되자 연락받고 온 친척들이 모여들어 울음바다가 된다.

나는 종종 용감해질 때가 있다. 이 순간 또한 그랬다. 침대 옆에 가 이것저것 부착한 기계들 모니터링하며 크게 말했다.

“그만 울고! 지금 돌아가셨나요? 아니잖아요. 지금 귀는 다 들릴지도 몰라요. 힘이 되는 좋은 말씀을 해주셔야지 울고불고 하지 마소. 이 아버님 평소에 건강하셨다더니만, 이겨내라고 손잡고 힘줘 말하소. 이제 우는 사람 다 내 보낼라니까!”

그제야 울던 눈가 닦고 고개 끄덕이며 환자의 손이며 발을 만져보신다.

중환자실에 입원한지 2주가량 되었을까? 온몸의 근육이 다 말라 앙상해진 환자 곁에 항상 슬리퍼 신고 앉아 그를 보는 몇십 년을 함께 산 짝지가 있었다. 물론 처음 갔던 대학병원도 앰뷸런스로 그 동안 두어 번 더 다녀왔다. 마지막에 다녀오셨을 때 보호자는 출혈이 자연스레 흡수되어가는 상황이라고 기적이라 했다 하시며 그래도 우리 병원에 있는 게 안심되어 바로 내려왔다고 말씀하시며 웃으신다.

인수인계 끝나고 환자 상태 체크하며, “아빠! 이제 좀 깨야지. 살 다 마른다. 듣고 있지요? 엄마 고만 힘들게 하고 이제 눈뜨고 일어나자. 눈 안 떠져도 들리면 이제 연습해요. 발가락 움직이는 거 손가락 까닥! 해봐요. 왜 못해!”

입원한 지 1달 넘어갈 무렵 결국엔 눈을 뜨고 손주들이 전화 오면 귀에 대드리면 통화 듣고 내가 손잡으며 “아빠! 오늘 운동 연습했어요 안했어요? 했으면, 나랑 약속 지켰으면 내 손 꽉 잡아봐요!” 하면 우와 힘이 느껴진다.

눈을 뜨신 후에는 석션기의 압력에 마르다 마른 몸을 움찔... 눈물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하신다. 내가 석션 받은 적은 없어도 그 고통을 목구멍에 진공청소기를 들이미는 것 같다는 표현을 여러 차례 들었기에 아는 거다.

“아빠! 미안. 그래도 해야 해. 잘 참았어요. 그러니까 가래 억지로 뽑는 것 안 하려면 더 운동해요.” 눈물이 흘러나온 게 아니라 고통에 터져 나온 눈물을 거즈가 아닌 내 손으로 닦아드릴 때면 평온을 찾으려 애쓰던 그 눈망울이 요즘도 종종 생각난다.

물리치료실 선생님들도 따로 시간 내어 직접 오셔서 근력강화운동 시켜주시고 이제는 누구도 환자를 포기하려 들지 않았다. 점차 회복되어 가는 환자 분과는 반대로 환자 분의 아내는 갈수록 여위어간다. 아빠가 입원하면 종일 아빠 곁을 지키던 엄마가 생각나 보호자분께 점심시간에 내가 바빠서 못 먹을 때에는 내 식권으로 식판에 점심 몇 번 가져다드리곤 했다. “엄마! 엄마가 잘 드시고 건강해야지 아빠 계속 옆에서 지켜줄 수 있어요. 이제 조금만 더 힘내요.” 말씀드리고 한 번씩 안아드렸다.

아쉽게도 환자분이 퇴원하시는 것을 못 보고 사정이 생겨 퇴사를 했다. 그 보호자 분은 내가 목포에서 놀러온다고 동료들에게 전해 들으면 슬리퍼만 신고 병원 입구 큰길까지 와서 나를 제일 먼저 안아주시곤 했다.

기적은 우연도 아니고 운명도 아닌 것 같다. 기적이란 간절히 바라며 노력의 대가로 빚어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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