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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아요”

[창간30주년 특별기획 – 완도사람 이야기] ① 7년만에 대학 졸업한 당찬 만학도 이종희 어르신

  • 강미경 기자 thatha74@naver.com
  • 입력 2020.09.04 15:42
  • 수정 2020.09.07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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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세의 나이에 초등학교를 시작으로 7년 만에 대학교 졸업장까지 취득한 군외면 원동리에 사는 이종희씨를 인터뷰하여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 했다. - 편집자 주

 

“빈 자루를 똑바로 설 수 없다”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공부할 수 있다.
내 눈이 보일 때까지
나는 할 수 있다. 공부할 수 있다.
내 귀가 들릴 때까지
나는 할 수 있다. 공부할 수 있다.
내 입이 말 할 때까지
나는 할 수 있다 공부할 수 있다.
내 손과 발이 움직일 때 까지

나는 청산도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을 끝으로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그 당시 큰오빠의 깊은 병환으로 온 가족이 매달려야 해서 나는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만 했다. 열여섯 살에 엄마가 돌아가신 후 땡초보다 매운 객지생활이 시작됐다. 20대엔 친척의 도움으로 미제 물건을 팔기 시작했는데 영어를 읽을 줄 몰라 영어사전에서 똑같은 글자가 어딨는지 그림으로 맞춰가며 물건을 팔았다.

서울서 식당, 찻집, 꽃집 등 다양한 장사를 하다가 외환위기를 맞아 무일푼으로 고향인 완도로 내려와 군외면 원동리에 작은 식당을 열었다. 하루 종일 삶에 지쳤지만 공부에 대한 열망은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 2008년 63세에 운전면허를 땄다. 운전 할 일은 없었지만 국가자격증이 갖고 싶었고 따놓으면 언젠가는 써먹겠지 하는 생각에 무작정 운전학원에 등록했고 드디어 내게도 국가자격증이 생겼다.

식당일을 하던 어느 날, 우연히 방문학습지 교사를 알게 됐다. 학습지 교사는 자녀분이 학습지를 하는 거냐고 물었는데, 내가 배우고 싶다하니 처음엔 의아해했다. 그렇게 3년을 학습지를 통해 영어도 배우고 한문도 익혔다.

그러던 어느 날 학습지 선생님은 학습지로 배우는 것도 좋지만 학습지 잘한다고 졸업장을 주는 건 아니니 학교에 다녀보지 않겠냐고 권했다. 그렇게 나는 2013년 3월 목포 제일정보 문해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드디어 장롱면허였던 운전면허증 쓸 때가 온 것이다.

완도에서 목포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녔다. 미숙한 초보운전이었기에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평생 초등학교 졸업장 하나 갖지 못하고 세상이 끝나버리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아픔보다 학교를 못가는 것이 더 슬펐다.


다음 해인 2014년 2월, 무사히 졸업하게 됐다.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기까지 무려 58년이 걸린 셈이다. 그때 내 나이 예순 아홉이었다. 초등학교 졸업장을 손에 넣으니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뻤다.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으니 중학교에 가고 싶어 졌고, 그해 바로 목포 제일정보 중학교로 진학했다. 스승님의 말씀 한마디가 땅에 떨어질까, 바람에 날아갈까, 할 수만 있다면 하나도 놓치지 않고 보자기에 싸 갖고 오고 싶었다. 늦은 만학도의 공부라 듣고 나면 무슨 말을 했는지 교과서를 아무리 봐도 모를 때가 많았지만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주위에서는 그 나이에 배워서 뭐하냐며 식당일은 뒷전이고 학교만 쫓아다니는 나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도 많았다. 살림이 넉넉하여 공부에만 매진한 것도 아니었다. 생계는 내팽개치고 학교만 쫓아다니니 자연스레 빚도 늘어났다. 기름 값이라도 벌어볼 요량으로 완도수산시장에서 김이며 다시마·멸치 등 건어물을 떼다가 같이 공부하는 학우들에게 팔아 여비를 마련하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위기가 닥쳐왔다. 폐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될까봐 수술 날짜를 받아놓고 제발 고등학교 졸업만 하게 해달라고 책상 앞에서 얼마나 펑펑 울었는지 모른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왈칵 눈물이 난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학교에 가진 못했지만 공책에 영어 단어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썼다. 그저 모르는 거 배우는 게 너무나 좋았다. 다행히 초기여서 퇴원하자마자 학교로 달려갔다. 하루 종일 마늘밭에서 일하느라 손끝이 아려오는 고통 속에서도 연필을 내려놓지 않았다. TV 드라마보다 영어 단어가 재밌고, 침대에 누워서도 한자 부수를 외우며 잠이 들었다. 어떻게 시작한 공부인데……. 단 1분, 1초도 허투루 보낼 수 없었다.

그동안 사회복지사 자격증, 심리상담사,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다양한 자격증도 취득했다. 2020년 올해 동아보건 전문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다. 그리고 내 나이 일흔다섯 살에 당당히 취업도 했다. ‘노인일자리 컨설턴트’라는 직업을 갖게 되고 나만의 명함도 생겼다. 내가 7년 전 공부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상상할 수도 없는 미래가 펼쳐진 것이다.

“빈 자루를 똑바로 설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자루 속이 가득해야 홀로 설 수 있다. 내 빈 속을 공부로 가득 채우니 일흔다섯이라는 나이에 당당히 취업에 성공할 수 있었다. 지금 내겐 새로운 꿈이 있다. 형편이 어려워 어쩔 수없이 공부를 포기 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마을 지역민들에게 내가 배운 지식을 나누어주고 싶다. 그래서 식당 한켠에 컴퓨터 2대를 설치했다. 스마트폰 사용법도 알려주고 문자 보내기도 알려주고 있다. 새롭게 요양보호사 공부도 시작했다. 매일매일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공부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이 끈은 나를 살게 해주는 생명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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