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30년 된지 몰랐다. 300년까지 끄떡없이 갔으면”

[창간30주년 특집기획] '찐'독자를 만나다 ① 완도신문 창간발기인 접수 1번, 제일사 김겸호대표

  • 박주성 기자 pressmania@naver.com
  • 입력 2020.09.07 10:03
  • 수정 2020.09.07 18:56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창간30주년을 맞아 완도신문이 만난 '찐' 독자는 1990년 완도신문 창간 발기인 접수 1번, 제일사 김겸호 대표이다.

완도신문 소식지와 창간호 묶음집을 넘기다 가장 먼저 완도신문 창간 발기인에 명단을 올린 분을 발견했다. 당시 접수 신청순으로 명단을 옮겼다는 기록이 있는 걸로 보아 가장 먼저 출자금을 낸 분이 아닌가 싶다. 바로 완도읍 강진완도축협 맞은편에 있는 도장·인쇄를 전문으로 항상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제일사 김겸호 대표(64).

완도신문의 역사가 오롯이 기록된 첫 번째 묶음집을 들고 가서 당시 소식지와 창간호를 김 대표에게 보여주니 당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표정이다. “완도신문 창간 현판식을 자리가 좁아서 그런지 교육청 근처에서 했던 것이 기억난다. 최용안 씨라고... 돌아가셨는데 그 형이랑 같이 발기인에 이름을 올리고 구독을 했다. 경국이 형도 이름도 오랜만에 본다...”

옆에서 평생 동반자이신 사모님이 거든다. “처음 50만원을 출자한 것 같다. 그때 돈으로 큰돈이었다.” 김 대표도 다시 기억을 끄집어 낸다. “그땐 어려웠다. 십시일반 모금해 완도신문을 창간했다.” 발기인 명단을 보더니 이제는 돌아가신 분들 이름을 불러보기도 한다. 옆에서 “이때는 억지로 뻇어갔다”는 사모님의 웃음소리도 들린다.

김대표는 그래도 아직 김정호 당시 초대 편집국장 편인가 보다. “정호가 해주라고 하니까 했다. 정호가 말안했으면 안했다. 정호가 빤뜻하니까 하자고 하니까 했다. 정호 때문에 완도신문도 창간됐다고 나는 생각한다. 먼일을 항상 앞서간다. 엉뚱한 짓을 가끔해서 그렇지”하며 지긋이 웃는다.

첫 묶음집을 뒤적이더니 “진리를 추구하는 신문되길 – 완도읍 제일사”라고 써진 창간호 광고를 보고 “내가 이런 말도 썼나” 한다.

“작은 놈 난 해 (제일사)가게를 열었다. 84년쯤일거야. 벌써 36년이구만. 처음 도장 판지도 오래됐네. 그때 시작할 때는 묵고 살라고 했지. 이렇게 오래할 줄 알았나. 이 주변에서 계속 가게는 있었는데 이 자리가 아니고 중학교 건물 앞에 도단(양철)을 붙여 가건물 집을 해서 살았다. 그땐 다 그랬다. 거기서 가게를 했다”

마지막으로 김정호 초대 편집국장 말에 50만원이나 되는 거금을 출자금으로 낸 완도신문이 30년이 됐다고 한마디 해달라고 하니 주옥같은 말을 남겨 주신다.

“김정호 대표 보고 발기인 참여해서 여기까지 왔다. 벌써 30년 된지 몰랐다. 30년 왔으니 앞으로 300년까지 끄떡없이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정호와 완도신문이 생각하는 것이 바르고 옳게 가고, 마지막 종착지가 누구든지 인정할만하고, 누구든지 있을만한데, 누구든지 포용할만 완도신문이 됐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