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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는 어떤 사람인가 Ⅰ

[완도신문-(사)장보고연구회 공동기획-청해진대사 장보고] 추강래 / (사)장보고연구회 사무국장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0.09.18 11:09
  • 수정 2020.10.09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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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동성 영성시 적산법화원 내 장보고전기관 앞에 세워저 있는 장보고대사 동상.

“한마디로 말하여, 장보고 대사는 해양경영사에 있어 전무후무한 천재이다.
범선 항해 시대 장보고가 이곳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한 것은 지정학적으로 해양진출과 방어기제의, 양면에서 천재적인 혜안을 가졌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청해진 터, 그 자체가 천혜의 이상적인 지정학적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동, 서, 남망산에 올라 중국, 일본, 한반도 서남해안 일대를 왕래하는 선박의 동태를 명료하게 동시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당시의 해상경영 활동에 필수적이었다. 나아가 조선과 해운 및 군사훈련의 기지를 죽청리 ‘한들’에 설치하고 전함을 장도를 비롯 청해진 일대, 즉 다도해 중심지에 배치한 것은 현대적인 해사 운영 관점으로 보더라도 장보고는 천재라고 말하여 과언이 아니다.”

1992년 11월 19~20일, 이틀 동안 완도에서 국내외 학자 150여 명이 “장보고 대사와 후기 신라인들의 해상활동에 관한 제1회 국제 학술심포지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심포지엄에 참석한 미국 펜실베이니아 어시누스대학 휴 클라크 교수가 하였던 말이다.

그는 심포지엄 전에 완도군과 다도해 섬들을 돌아보고 자신의 주 발표였던 “8~10세기 하나 반도와 남중국 간의 무역과 국가 관계”라는 논문 발표 전에, 청해진의 장소를 완도로 정한 장보고 대사의 천재성에 감탄을 금치 못한 채 힘주어 강조하였던 말이다.

같은 미국인이면서 주일대사를 지냈던 하버드대학 라이샤워 교수는 엔닌의 ‘입당구법 순례행기’를 번역하면서 장보고 대사를 ‘해양상업제국의 무역 왕’으로 극찬하였다.

그는 장보고 청해진 세력은 단순히 한·중·일을 연결하는 국제 3각 무역에 그치지 않고, 중국 내의 남북 중계무역을 담당하고, 페르시아, 동남아시아 상인들과의 상거래를 주도한 국제무역상이다.

오늘날 국제물류와 해운조선업과 중계무역의 효시가 다름 아닌 장보고 선단이었다고 말하면서 동양 3국의 해상 무역왕(The Prince of Maritime Commercial Empire) 칭호가 사실임이 입증되고 있다고 하였다.

장보고 대사에 관한 최초 기록을 썼던 당나라 시인 두목은, 장보고를 직접 만나지 못했으면서도 자신의 저서인 ’번천문집‘에 특별히 ’장보고 정년‘편을 집필하였다. 만나지는 못했지만, 장보고가 당나라에 있을 때나 신라로 돌아와 청해진을 설진하였을 때그의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활동에 대하여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번천문집‘을 보면 재당 시절 장보고와 정년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년이 당나라에서 무령군중소장을 그만두고 유량 걸식하다 장보고에게 몸을 의탁하고자 고향으로 돌아와 청해진을 찾았다. 이때 정년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포용력에 감복하여, 당나라의 대장군 곽분양과 이임회에 비교하면서 “나라의 우환을 걱정하는 이로 진의 기해가 있고 당에 곽분양과 장보고가 있는데 어찌 동이에 사람이 없다 할 것인가?” 하면서 자신의 저서인 ’번천문집‘ 권 6에 별도로 ’장보고 정년‘편을 집필하였다.

두목이 말하는 진나라의 기해라는 인물은 우리 정치인들이 배워야 할 중요한 인물이다.
“기해천수(祁奚薦讐)” 이 말은 기해가 원수(怨讐)를 공직에 추천했다는 의미다. 기해(祁奚)는 사람 이름이다. 사마천 '사기'(史記)의 진세가(晉世家) 편에 나오는 일화에서 유래한 고사성어다. 인재를 추천하는데 있어 사감(私感)이나 친소관계를 떠나 공평무사하게 그 자리에 최적의 인물을 추천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인재를 추천할 때 새겨야 할 격언으로 자주 인용된다.

진나라 도공이 기해에게 인재를 추천해달라고 하자 기해는 주저 없이 자신과 적대관계에 있어 원수나 다름없던 해호(解弧)를 추천한다. 그러나 해호가 관직에 등용되기 전에 급사하자 도공은 다시 기해에게 인재를 추천해달라고 한다. 기해는 또 서슴없이 기오(祁午)를 추천했다. 그런데 기오는 기해의 아들이었다. 그럼에도 기해는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이를 두고 사마천은 "기해는 당파를 만들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밖으로는 원수임에도 추천했고 안으로는 자식임을 숨기지 않고 추천했다"고 찬했다.

기해의 인재 추천 일화에서 '외거불피구(外擧不避仇) 내거불피친(內擧不避親)' 즉, '밖으로는 원수를 피하지 않고 안으로는 친족도 피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유래했다. 뛰어난 인재라면 사사로운 감정을 떠나 적극 천거 또는 기용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요즘 심심찮게 포토라인에 선 장관들을 볼 수 있다. 기해천수라는 엄정한 인재 천거원칙을 알고 임명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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