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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이제 장수하것다!

[에세이-횡간도 통신] 박소현 / 횡간도보건진료소장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0.09.25 14:50
  • 수정 2020.10.09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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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갑자기 진료소에 황급히 부르며 평소와는 다른 걸음걸이로 들어오는 환자가 있었다. 남편을 따라 추석맞이 벌초에 나섰다가 그만 말벌에 여러 곳을 쏘인 것이다. 얼마나 덩치 좋은 녀석들인지 침이 빠진 자리에는 구멍이 난 듯 보이며 피가 흘렀다. 머리 부분에 네 군데 목, 몸통, 손바닥까지... 

얼른 카드를 꺼내어 물린 부위를 쓱 긁듯이 밀어가며 박혀있는 침들을 서둘러 제거했다. 독침의 길이가 자그마치 5mm 이상 되어 보인다. 환자는 물린 부위 통증 호소는 물론이고 복통과 어지러움을 호소했다. 눈이며 입 주위도 붉게 부어오르기 시작한다. 혈압을 체크하려는 순간 뒤로 넘어가 버린다. 혈압은 60/40mmHg가 체크되었다. 얼른 눕혀 다리를 머리보다 높게 올리고 응급처치 약물을 사용하고 환자분을 흔들어 깨우자 가까스로 눈을 뜬다. 같이 온 동네 어머니 한 분이 “워따워따 살아났네. 인자 너는 벌침 맞었은께 장수하것다.” 말씀하신다.

참으로 황당한 말씀이다. 인근 보건지소장님과 전화로 상의 후에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기로 하고, 혈압이 정상치에 가깝게 올라가기를 기다렸다. 상처 부위를 소독하면서 버럭 질을 하기 시작했다. 환자의 의식을 계속 깨우려는 목적과 정말 필요한 잔소리이기에 우렁찬 목소리로 “지금 산에 가는 분이 복장이 이게 뭐여요? 반소매입고 모자도 안 쓰고 장갑도 안 끼고, 토시라도 하시지 그것도 안 하고, 진드기 기피제 뿌렸어요?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산에 가시면 어떻게 해요? 그렇게 교육을 했건만!” 하고 꾸짖었다. 그제야, “아이고 이럴 줄은 생각도 못 했소. 그냥 재미 삼아 따라갔다가 말벌 집을 건드렸는지 머리를 뭐가 톡 쏘길래 손으로 막 털었어요. 그길로 내려오는데 진료소까지 얼마나 멀게 느껴지는지. 다음부터는 시키는 대로 할라요.” 답하신다.

다행히도 혈압이 점점 안정되어 100/60mmHg 정도 체크되자, 119에 신고 후 보호자 배로 완도 화흥포항까지 나가기로 했다. 화흥포항에는 119구급차가 응급실로 이송하기 위해 대기 중이었다. 가는 배 안에서도 앉아 있지 말고 눕혀서 다리를 박스 위에 올려 다시 혈압이 떨어지지 않도록 교육하고 배가 황급히 달려가는 모습이 멀어지도록 바라보다 진료소로 돌아왔다. 다행히 환자가 무사히 도착해서 치료 중임을 확인하고야 마음이 놓였다.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벌초 대행 업체를 통해 명절맞이 벌초를 권장하고 있으나, 섬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당연히 평소처럼 직접 벌초를 한다. 말벌의 독은 꿀벌의 독보다 몇십 배 이상 독성이 강하다. 그렇기에 단순한 부종과 통증 이외에도 호흡곤란이나 신경학적인 마비 증상이 동반되며, 급격히 혈압이 떨어져 의식 저하를 가져올 수 있는 아주 응급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때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힘든 시기에 맞이하는 추석이니만큼 모두 조금만 더 안전에 신경 써 행복한 연휴가 되기를 기원한다. 마지막으로 벌초하러 가는 분께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안내해 드리며 글을 맺는다.

 1. 산에 오르기 전에는 반드시 모자 장갑은 물론이고, 목덜미 등 노출 부위를 최소화한다.
2. 모기 및 진드기 기피제를 입과 코를 막고 옷 위에 30cm 정도 거리를 두고 뿌린다.
3. 벌침에 쏘일 경우를 대비하여 휴대폰과 함께 카드나 동전 한 개를 챙겨간다.
4. 벌에 쏘였을 경우 준비한 카드나 동전으로 침이 박힌 반대 방향에서 시작해서 살살 밀어   벌침을 제거한다. 단 아무것도 없으면 손으로 뽑으려 하거나, 집에 와서 핀셋 등을 사용해 뽑으려 하면 안 된다. 통증이 심하면 아이스 팩(얼음)으로 냉찜질을 하고, 즉시 병원을 방문한다.
5. 산에서 돌아온 후에는 진드기 등이 붙어 있을 수도 있으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수건을 사용 해 털어내고 흐르는 물에 샤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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