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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우유에 다 바쳤거든요"

[차 한잔의 인터뷰] 27년째 우유배달·대리점 운영 중인“서울우유 대리점 김연자 씨(63세)

  • 강미경 기자 thatha74@naver.com
  • 입력 2020.10.16 10:12
  • 수정 2020.10.18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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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태양이 강렬했던 어느 날이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흐르던 삼복더위에 두꺼운 긴소매를 입고 머리엔 보기에도 더운 헬멧을 잠시도 벗지 않은 채 가게에 우유 납품을 하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더울까 생각했다. 

"처음엔 가정집 우유배달부터 시작했어요. “27년 전 처음 시작한 우유배달에서 지금의 서울우유 대리점을 운영하기까지 우여곡절도 참 많았다. “16년 동안 가가호호 방문하며 우유배달을 했어요.  왜 그리 계단이 많은지...“ 평소 걸음걸이가 어딘가 불편해 보인다 생각했는데 무거운 우유 가방을 짊어지고 5·6층 되는 건물들을 수없이 오르내린 탓에 무릎 연골이 다 닳아 쉰 살에 양쪽 무릎에 인공관절 삽입 수술을 했다. 바지를 걷어 올린 무릎 사이로 20cm 가량의 짙고 긴 수술 자국이 그동안 그녀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말해주는 듯했다. 

그녀는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우유배달하면서 목욕탕 청소도 두군데 했다. 어린 두 아이와 연로하신 시어머니도 모시고 있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기 4년 전부터는 대소변을 받아내야 할 정도로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92세에 돌아가실 때까지 병수발도 그녀의 몫이었다. 새벽 1시에 일어나 시어머니의 병수발과 어린 두 아이의 먹거리를 챙기고 나서야 우유배달을 나섰다.

우유배달을 마치고 나면 다시 집에 돌아와 집안일에 아이들과 시어머니 챙기고 저녁엔 다시 목욕탕 청소를 나갔다. 하루 4시간 이상 자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남자들도 위험해 하는 오토바이를 37살부터 타기 시작해 27년째 타고 있다. 한여름 뙤약볕에도 두꺼운 긴 소매 옷과 헬멧을 뒤집어쓴 채 달렸고, 눈·비가 온다고 우유배달을 쉴 수 없으니 궂은 날씨에도 오토바이를 타야 했다. 

오토바이를 타다 보면 가슴 철렁이는 사고의 순간들이 늘 도사리기 마련이다.  몇 년 전 현대아파트 언덕에서 탑차 트럭과 부딪혀서 갈비뼈 6대가 부러지는 큰 사고를 당했다. 무서울 법도 한데 그래도 신속한 배달을 위해선 오토바이만 한 게 없다는 것이 그녀의 27년 우유배달 지론이다. 

”이제 와 새삼스레 고생한 거 이야기하면 무엇 하겠어요. 이렇게라도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젊은 시절, 불평 속에서 하루하루 살았던게 후회된다는 그녀는 지금의 생활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감사하단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오토바이를 타며 신선한 우유를 배달할 거예요. 내 인생을 우유에 다 바쳤거든요“  오늘도 그녀의 오토바이는 행복을 향해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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