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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손이 가 닿는 곳[완도 시론] 정택진 / 소설가
완도신문 | 승인 2020.11.27 11:23

양파를 심고 있는데 저만치 놈시밭 가에서 영준이어머니가 부른다. 끄슬쿠를 밀고 밑에까지 와서는, 돌계단은 뽈뽈 기어서 올랐을 것이다. 어머니가 쓰러졌을 때 약값 하라고 오만원짜리 두 장을 내 손에 쥐어주던, 아흔이 다 된 조카며느리다. 어머니에 대한 소식을 물으러 왔지 싶으다.

“영준이는 산에 갔소? 근디 뭔 일이다우?”
그니에게 가까이 가면서 물었다.
“이리 앉어 보시오. 손 잔 이리 줘보시오.”
손을 달라기에, 그니 옆에 쪼그려앉으며 오른손을 내밀었다.
“하나님아버지, 우리 의진이어머니가 쓰러져 저라고 고상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너머나 착하게 살어 온 사람입니다. …….”

내 손을 잡더니, 그니가 어머니를 위한 기도를 시작한다. 일상에서는 그저 노인들의 말투인데 기도에는 막힘이 없다. 나는 얼떨결에 기도 속으로 따라 들어갔다. 어머니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어쩌면 그니의 기도빨이 먹혀 어머니가 훌훌 털고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멍하니 있던 왼손으로 그니의 손을 마주잡고 있었다.
“나가 의진이즈검무 일어나게 해주라고 날마다 이라고 기도하요. 우리하나님께서 틀림없이 기도를 들어줄 거요.”

기도를 마친 그니가 나를 보면서 한마디 하신다. 눈길이 몹시도 간절하다.
“야, 아짐찬하요야.”
기도가 끝났는데도 나는 그니의 손을 잡은 채 한참을 있었다.

인간이 신을 만들었든 신이 존재하니까 인간이 믿든, 신이 죽었다고 생각하든 신은 영원하다고 여기든 나는 별로 관심이 없다. 나는 ‘생자필멸’의 진리를 알고 있고, 그 진리 안에서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가고 있는 도중이다. 진짜로 신이 있어 죽은 후의 세계를 관장한다면, 이 순간에도 죽어 나뒹구는 저 도로 위의 고라니의 영혼까지도 거두어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신을 믿든 그렇지 않든 인간은 어떤 대상에게 무언가를 기원하는 존재이다. 그것이 인간의 나약함에 기인하든, 인간을 둘러싼 세계의 냉혹함 때문이든 대부분의 인간은 그럴 수밖에 없다. 인간의 간절함이 신에 닿아 그 기원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고, 그러지 못해 그저 기원으로 그치는 때도 있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았든, 중요한 것은 기원을 함으로 해서 기원하는 자가 됐든 그 대상이 됐든 기원의 속에 들게 됐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를테면 영준이어머니가 내 어머니를 위해 기원함으로써, 영준이어머니가 내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알게 됐고, 그것을 어머니에게 말함으로써 어머니도 그것을 알게 되고, 그럼으로써 나와 내 어머니 역시 영준이어머니를 위해 기도를 할 것이고, 결국 우리는 인간으로써 서로를 생각하는 존재가 됐다는 말이다. 영준이어머니는 두 손을 모으고 그니의 하나님께 기도를 했지만, 나와 내 어머니는 우리 조상들께 두 손을 비비며 비손을 할 것이다. 기도의 모양과 그 대상은 다를지라도 비손하는 것이 서로를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동일한 행위가 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신이 있다. 나는 어떤 신이 어떤 신보다 더 영험하다고는 믿지 않는다. 인간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신은 적어도 그것을 믿는 그 인간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영험한 존재일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다. 저 광화문 광장에서, 대중을 향해 외치면서도 마치 하늘을 향해 간구하는 포즈를 취하는, 사실은 자신의 잇속을 바라면서도 마치 세상의 평화를 위한 듯한 몸짓을 하는 그런 것 말고, 끄슬쿠를 밀고와 계단을 기어올라, 저 놈시밭 가의 돌에 앉아 이웃의 손을 잡고 그 이웃의 건강을 기원하는, 하늘을 향해 있되 동시에 인간을 향해 있는 그런 기도, 그런 비손 말이다. 그것이 진짜로 문제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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