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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완도인 장보고 대사Ⅱ완도신문-(사)장보고연구회 공동기획-청해진대사 장보고] 추강래 / (사)장보고연구회 사무국장
완도신문 | 승인 2020.12.04 10:32

넷째 중국 역사서에 섬사람이라는 기록이 있다. 장보고가 섬사람인 것을 증명하는그것은 신당서 신라전의 기록에도 있다.   “(정)년은 능히 바닷속에 들어가 50리를 걸어도 숨이 차지 않는다.”  여기에서 정년이 바닷속에 잠수하여 물밑을 걸어 다닐 수 있었다고 하였다. 이점이 그들이 ‘해도인’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다섯째 삼국사기에 청해진은 완도라고 정확히 밝히고 있다. 장보고가 암살된 지 304년 후인 1145년에 편찬된 삼국사기에 의하면, “828년 여름 4월, 청해대사 궁복弓福은 성이 장張씨인데(일명 보고保臯라고도 한다.) 당나라 서주에 들어가 군중소장이 되었다. 후에 귀국하여 임금을 알현하고, 군사 1만 명으로 청해진(청해는 지금의 완도이다)을 지키게 되었다. 여기에 “청해는 지금의 완도”라 명확히 적혀 있다. 

여섯째 장보고에 관한 유물이나 유적, 설화는 대부분 완도에 있다. 역사 속의 위대한 인물은 그가 태어난 지역이나 활동한 곳에서 많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래서 서로 자기 지역 출신으로 만들기 위해 홍보 전략을 펼치기도 한다. 그러나 장보고 대사에 관하여는 자기 지역 출신이라 주장한 자치단체도 없고, 전설이나 유물 유적이 발굴된 곳이 거의 없다. 오직 완도만이 장보고에 대한 설화나 유물 유적 등이 발굴되고 있다. 

일곱째 장보고의 집안을 표현하는 기록에서 섬사람임을 추측게 한다. 삼국유사에서 장보고의 집안을 측미側微하다고 하였다. 즉 집안이 궁색하며 보잘것없다고 하였다. 그것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대체로 그가 서라벌과 멀리 떨어진 변방  해도 출신이기에 측미하다고 표현하였지 않을까 추측된다.

여덟째 인동장씨 족보에 청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인동장씨 족보인 ‘장씨연원보감’에 신라 애장왕 2년(801) 현재 완도읍 장좌리에서 태어났으며, 그 아버지는 장씨의 도시조都始祖인 백익伯翼이다. 원래 중국 절강성 소주부 용흥 사람으로 휘諱는 만리인데 뒤에 순용으로 고쳤으며 몇 차례 신라를 왕래하다가 귀화하고 청해에 정착하여 어부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태어난 해에 대하여 현재의 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년도 와 많은 차이가 난다. 학자들은 번천문집에 근거하여 나이 30세에 무령군중 소장이 되었다는 기록으로 태어난 해를 789년 전후로 계산하고 있다. 그것은 무령군중 소장이 된 나이를 제나라를 멸망시키는 819년으로 계산하여 30년을 감하였을 경우 789년이 된다. 장씨 연원보감에 명시된 아버지의 이름까지 정확히 기재하였다는 것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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