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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난대림과 절경의 해안이 어우러진 “윤선도명상길”특별기고/ 황영선 여행가
완도신문 | 승인 2021.02.19 10:49

 

예송리 해변에서 뒷산으로 오르기 시작합니다. 격자봉을 지나 뽀래기재에서 보옥리 해변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갔다가 해안을 따라 예송리로 돌아오기 위함입니다. 산길 들머리에서 부터 짙푸른 숲이 반깁니다. 이국적인 새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옵니다. 영역 침범에 대한 경고인지 사랑의 세레나데인지 궁금해집니다.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좁은 길이 있습니다. 나무 굵기로 보아 이삼십 년 이상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습기 풍부한 난대림에서나 만났던 콩짜개란이 지천입니다. 포자를 품은 개체도 있습니다. 생명의 기운이 샘솟음 칩니다. 길을 오르니 광대봉과 적자봉 사이의 고개입니다. 해안도로가 없던 시절 북동쪽의 청별항과 황원포에서 윤선도 유적지가 분포한 섬 중심의 부용동을 지나 동남쪽의 예송리를 연결하던 길입니다.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갔으니 이름하여 ‘큰길재’입니다.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서쪽으로 향합니다. 완만하여 힘들지 않습니다. 뒤돌아보니 푸른 산, 파란 하늘과 흰 구름, 바다와 섬이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격자봉을 지나 망월봉에 이르기 전 보옥리로 내려가는 삼거리인 뽀래기재까지 바다로 이어진 산 남사면에는 푸른 숲이 무성하고 고지대에는 낙엽 진 소사나무가 가득합니다. 바닷바람을 정면으로 맞는 높은 산에 어찌 이리 나무들이 빼곡하게 자라났는지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433미터의 격자봉을 넘어 무성한 숲과 툭 트인 전망의 바위 지대 등을 지나니 뽀래기재입니다. 섬을 가로질러 북동쪽에서 남서쪽의 보옥리로 넘나들던 고개입니다. 바닷가에 우뚝 솟은 보족산의 원래 이름은 뾰족함을 뜻하는 뽀래기산이었답니다. 보옥리로 내려오는 내내 열대우림으로 착각될 정도로 숲이 넓고 깊습니다. 예송리에서 능선을 따라 보옥리까지 지도상 거리는 7km, 간식을 먹으며 여유롭게 걸으니 네 시간쯤 걸렸습니다.

  우뚝 솟은 보족산과 불무섬이 제주에서부터 이곳까지 탁 트인 큰 바다의 거센 파도와 바람을 막아 포구를 만들고 마을이 자리잡았습니다.
호박돌과 몽돌이 깔린 공룡알 해변은 햇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입니다. 이제 보옥리에서 해변을 따라 예송리로 돌아갑니다. 최근 '윤선도명상길'이라는 이름으로 연결된 바닷가 오솔길입니다. 중간의 3~4km 정도가 급경사일 것으로 짐작은 했는데 전 구간이 오십에서 이백 미터를 오르내리는 구비구비 절경의 벼랑길, 빛이 들어오지 않을 정도의 난대 숲 등 나름 험난한 길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습니다. 평탄한 길이 시작되리라는 희망을 가질 때마다 새로운 산 구비와 가파른 오르막이 나타나곤 합니다. 해안 절벽 위로 걷는 숲길에는 집이나 밭을 둘러쌓았던 돌담 흔적도 남아있습니다. 옛터에 자란 나무들로 보아 사오십 년 이상 묵은 것으로 보이는데, 험난한 지형인데다 바닷바람을 마주하는 척박한 곳에서 어찌 삶을 견뎠을지 아련해집니다.

  군복 무늬 비슷하여 해병대 나무라 불리는 육박, 크고 굵은 자연산 황칠, 절벽에서 거센 바람에 맞서며 무수한 열매를 맺은 다정큼, 잎 뒷면이 은색으로 빛나며 육지의 보리수와 비슷한 보리밥, 용트림하듯 바위를 타고 오른 송악, 짙붉은 꽃을 피운 동백, 푸르른 녹나무, 늦가을에 짙은 보라색 열매를 맺는 굴거리, 꽃 필 때 심한 지린내를 풍기는 사스레피 등 온갖 난대 수목들이 가끔 파도 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두텁고 깊은 숲을 이루었습니다.

  예송리를 비롯하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상록수림은 대부분 인공 조성된 방풍림입니다. 진도 첨찰산, 완도수목원, 강진 가막섬, 제주 곶자왈과 문섬 정도가 자연 난대림이지요. 그런데 보길도의 능선과 해안처럼 왕성한 생명력으로 너른 지대에 분포하는 빽빽하고 다양한 수목의 난대림은 처음입니다. 보길도 남쪽 해안이 도로 건설이 어려울 만큼 험한 절벽과 산사면이라 오랫동안 사람의 간섭이 끊겨 자연 상태 그대로 보존된 것으로 보입니다. 
능선과 해안 길도 본래의 모습을 해치지 않고 걷기에 좋을 만큼만 조성하였습니다. 완도군에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단지, "윤선도명상길"보다는 ‘아름다운 해안 벼랑길과 환상의 난대 숲’을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이름이면 어떨까 싶습니다. 윤선도와 연결시키지 않아도 독보적인 난대 숲인데다 빼어난 절경의 해안이기 때문이지요. 

  조만간 보길도를 향해 다시 발길을 돌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첫날은 황원포에서 걷기 시작하여 세연정과 동천석실 그리고 낙서재와 곡수당을 구경하고 큰길재를 넘어 예송리에서 숙박합니다. 둘째날은 아침 일찍 예송리에서 ‘윤선도명상길’을 따라 공룡알 해변까지 가서 보족산에 오른 후 뽀래기재~격자봉~적자봉~큰길재를 거쳐 예송리로 돌아옵니다. 셋째날은 차를 타고 백도의 송시열글씐바위를 구경한 후 중리에서 이어지는 도치미 해안 절벽길을 걷고, 김양제 고택과 천연기념물 황칠나무를 구경한 후 망끝전망대에서 일몰을 감상하고 싶습니다. 새벽에는 예송리갯돌해변을 산책하고 밤에는 쏟아지는 별을 보면 더욱 좋겠습니다. 보길도!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진 최고의 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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