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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한 살 미혼모의 나에게 그대만이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1.02.26 10:20
  • 수정 2021.02.26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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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한 살쯤이었을까? 몹시도 추운겨울.
손님들이 모두 떠나면 정말 숨 가쁘게 식당을 정리하고 부리나케 뛰어나갔지.
택시를 타고 그곳까지 가기엔 너무 좁은 골목.
반은 달리기에 그러다 숨이 가쁘면 빠른 걸음으로... 정해진 시간은 밤 11시. 11시 안에는 무조건 아이를 데려와야 했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손님들이 가지 않으면 속은 바짝바짝. 

그리곤 정신없이 달리기. 마음 속에선 “아가야! 조금만 기다려... 엄마 가고 있으니까. 조금만”
아이가 기다릴 생각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그렁그렁... “정말 미안해... 너무 미안해. 우리 아가!”
아이를 안고 나올 때면, 아이를 맡아 준 보모의 한결같은 말 “지 데리러 올 시간은 어찌 아는지 그 시간이 되면 현관문만 바라본다”고.

돌이 갓 지난 갓난아이가 말도 못한 채 그렇게 엄마를 기다린다. 아이를 안고서 터벅터벅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는 너무나 건강해 포대기 안에서 펄쩍펄쩍 뛰어놀며 즐거운 맘을 맘껏 표현한다.  아가야! 엄마가 그리 좋아? 아, 세상 무엇과 바꿀 수 있을까? 이 느낌.
엄마와 아가는 그렇게 교감했다.

어느 날이었다. 아이를 찾으러 갔는데, 아이의 열 손톱 끝 모두 피멍울이 맺혀 있는게 아닌가!
보모에게 “우리 아이 손톱 왜 그래요?” 했더니, 보모의 말 “글쎄, 아이가 우리 애의 얼굴을 긁어서 손톱을 깎아주었어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이를 안고 나오는데 후두두둑 떨어지는 눈물. 얼굴을 어디에도 둘 수 없었다. 그저 하늘만 바라보았다. 

그해 12월은 추웠다. 너무나 추워 달빛마저 파르르. 푸른 달빛! 아...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다.
삶의 희망이라곤 한가닥도 보이지 않았던 그때. 이대로 한강으로 가 버릴까?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정말!
10분 거리. 몇 번이나 망설였는지 모른다.
그런데 울 아가, 나만 보면 까르르 웃는 내 아가! 아가의 웃는 그 모습. 그 해맑게 웃는 모습에 죽음의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아가야! 미안해... 그 힘든 세월을 함께 이겨 내줬고, 내 옆에 여전히 사랑스럽게 있어 줘 고마워... 아가야, 너는 나의 힘든 세월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었다. 이제 중3. 너무나 자상하고 너무나 따뜻한 아이로 성장한 넌, 나의 기쁨이란다.
감사해. 넌, 언제까지나 나의 아가고 아들이며 사랑스런 연인.
‘나에겐 그대만이야!’

어이, 똥강아지! 힘이 돼 줘서 고마워.
답장은 기대도 않고 아들에게 카톡을 보냈는데 뜻밖에 아들이 다음 날 아침 답장을 해왔다.
엄마! 엄마가 쓴 편지보고 좀 많이 감동했어. 그런데 감동보다는 가슴에서 슬픈 감정이 더 앞서 왔어. 지금은 커서 어느 정도 알기 때문에 엄마가 좋은 형편도 아닌 상황에서 나를 너무나도 사랑해서 포기할 수 없기에 이렇게 힘들게 끝까지 나 키워 준거 정말 뼈저리게 느꼈어. 엄마가 망설였다고 했을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 것 같아. 그 정도였는데도 이렇게 엄마는 멋있게 그 힘든 세월을 이겨 내줬어~ㅠㅠ

엄마가 이렇게 날 키웠는데도 나는 엄마말도 잘 안 듣지. 어디서 안 좋은 거만 배워가지고 싸돌아 댕기고... 정말 힘들었는데.
지금도 날 위해 일하고 그러는데 나는 또 엄마 속 썩이지... 엄마 정말 고생했어. 엄마가 너무 자랑스러워!! 세상 그 누구보다 더 자랑스럽다. 글 보고 울컥했어 정말~

앞으로 더 잘할께 또 엄마가 오늘 보내준 엄마의 지난세월을 잊지 않고 간직할게. 내가 선에서 벗어나려할 때는 이 글을 보면서 다시 선을 되찾고 내가 힘들 때 이 글을 또 한 번 보면서 엄마가 날보고 힘을 내줬던 것처럼 나도 힘을 되찾으며 살아갈게. 나중에 커서 엄마가 힘들었던 만큼 다 갚을게. 우리 엄마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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