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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코를 세우고 코에 넣으니, 별이 뜨네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1.03.26 13:51
  • 수정 2021.03.26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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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시작되고 생각지도 못한 일상에 모두가 당황했던 작년 이맘 때, 그와는 별개인 바이러스가 내게도 찾아왔다.
보통의 바이러스는 잠복기가 있으며, 그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순간은 정해져 있었다.
바로 우리의 면역체계가 바이러스에 저항할 힘을 잃어버렸을 때다.
‘코로나블루’라는 신조어와 함께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마음의 감기’라는 이 바이러스의 메카니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미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던 부정적 생각들의 작은 문제가 변화된 생활환경과 인간관계에서 자존감, 자신감이라는 면역체계를 무너뜨리고 어느새 더 큰 문제로 발전되어 있었다.
보통 내게 있었던 얄팍한 우울감은 고작 몇 천원짜리 카페모카로 달랠 수 있었지만 어느새 덩치를 키운 녀석은 달달한 백신에도 소용이 없었다.
‘일이 너무 힘들어 그만두고 싶은데 부모님의 걱정, 실패자라는 주변의 시선이 무서워 출근하는 지금 이 길에서 죽지않을 만큼 다쳐 직장을 그만둘, 아니 잠시 쉴 수 있는 명분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어느 직장인의 고민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그런 날에 ‘쉼’을 선택했다.
그리고 텅 빈 시간과 공간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앞으로의 일에 대한 불안감에 잠식 당하지 않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 코바늘 뜨기.


여고시절 통과의례였던 십자수 놓기도 포기한 내 손이 유튜브 선생과 하루 종일 실을 떴다 풀었다를 반복하며 사슬뜨기, 짧은뜨기 등 기본기를 익히기 시작했다. 코를 세우고, 코에 실을 감고 넣었다 뺐다하는 단순노동이 수학적 균형에 의해 무늬가 생기고, 모양이 생길 때 쯤 내 마음도 잡념과 상처의 실타래는 버리고 긍정이라는 코를 단단히 세우고 있었다.
나는 단순히 코바늘을 뜨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을 뜨고 있었다. 결과보다는 과정에서 느끼는 기쁨과 만족을 찾고 타인의 인정에 얽매이지 않고 내 가치를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치유의 시간을 뜨고 있었던 것. 내가 만든 뜨개 소품들이 어느정도 모양을 갖추게 되자, 고마운 사람들에게 선물을 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완벽한 균형감을 갖춘 모양은 아니지만 내가 가장 힘들 때 나의 안부를 묻고 예전과 같이 챙겨주었던 사람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감사함과 미안함의 표현이었다.
우리 모두는 좀 더 윤택한 삶을 위해 성공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달려가고 있다.
 어쩌면 타인의 인정을 위해 못하는 걸 잘하려고 자책하며 노력하는 일보다 소박하지만 잘하는 걸 조금 더 잘할 수 있게 정성을 쏟는 일이 우리의 삶을 더 윤택하고 만족스럽게 하지 않을까?

 


모두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늘 마음의 평화가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을 힘들게 보내고 있는 이가 있다면, 단순한 동작의 반복이 주는 성취감을 통해 영혼을 치유할 수 있는 코바늘로 시간을 뜨기를 추천한다.
떠 보면 알게 된다.


간밤, 어느 별이 내려와 내 마음에 속삭인 말이었는지, 그 별이 얼마나 내 마음을 황홀케 하는 지. 그 별들의 눈썹에 어린 눈물 같은 반짝거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방희영/완도군청 해양정책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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