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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를 뿌리며 완도의 오월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1.05.08 10:54
  • 수정 2021.05.08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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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의 떼창이 앞산의 풍만한 초록을 물고 와 아침을 깨운다. 연분홍색 벚꽃이 미치도록 피더니 어느 날 가지를 붙들고 있던 손아귀에 힘을 빼고 날아갔다. 한 생 나긋하게 살다가 이 봄과 작별하고 풍장으로 사라진 게 벚꽃뿐이랴, 이른 봄 매화부터 시작해 왁자지껄 찾아왔던 봄꽃들, 가슴 후끈하게 한철을 달구더니 비상을 꿈꾸다 낙화했다.


오월이 무럭무럭 자란다. 나뭇가지마다 햇살이 걸리고 흙바람이 깨어났다. 다시 시작이다. 눈길을 그저 창 쪽으로 돌리기만 해도 등 뒤의 모든 것들을 순식간에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심심하다고 말하기 미안한 오월,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신록의 다정한 몸짓을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정오의 햇살이 도톰하게 내려와 오월의 향을 더 짙게 살찌운다. 살아있는 것들이 소곤소곤 속삭이며 움직이고, 간간이 바람이 머리카락을 휘젓고 가도 여유 있게 웃을 수 있는 시절이다. 사람들의 옷차림이 가벼운 바람에도 하늘거리고, 이젠 살며시 드러낸 맨살도 어색하지 않다. 눈과 코를 유혹하는 것들이 많은 시절, 그래서 지겨울 틈이 없다. 하지만 무료란 놈이 어디 호락호락했던가. 시도 때도 없이 나른한 하품을 데려오고, 계절을 넘나들며 어깨에 내려앉아 짓누르기 일쑤다. 말하기 미안하다뿐이지, 오월이라고 심심하지 않은 건 아니다.


아찔한 향기들이 모여든다. 라일락이 지나가자 하얀 이팝나무가 길가에 하얀 능선을 만들었다. 머리 위에서 서로 이어져 지붕을 만들고 있는 길을 걷고 있자면 마치 푸른 어둠이 이마에 내려앉는 느낌이다. 매번 다르게 겹쳐지는 세상일을 품고 있는 듯 꽃무덤이 빽빽하다. 멀리서 보면 꽃 뭉치들이 이파리를 제치고 앉은 모습이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사발에 소복이 쌓인 흰쌀밥 같아서 이팝. 어디 이팝뿐일까. 계절을 잊었는지 제철을 벗어나 앞다투어 피는 꽃들이 향기를 날리느라 분주하다. 현관문을 열 때마다 무리를 많이 이룬 꽃의 향기가 가장 진하게 달려옴을 느낀다. 현관문을 나서기도 전에 알았다. 어김없이 오월이 아까시나무꽃 향보다 먼저 이팝 꽃향기를 데려오리라는 것을, 바람이 가로수를 흔들자 눈앞에서 오월이 덮쳤다.


시원한 바람이 유혹을 해서 불려 나간 오늘, 봄을 즐기기에 잘 어울리는 날씨다. 덥지도, 춥지도 않고 살가운 공기가 신록을 흔들며 집으로 가는 발길을 잡아둔다. 초록이 넝쿨 줄기처럼 도시를 하나로 엮었다. 공원 의자에 앉아 희미하게 달라진 초록색의 채도를 즐기고 있다. 유년의 순수와 호기심은 무뎌져 감성이 간결해졌지만 오월만큼은 요요한 소녀적 두근거림이 찾아든다. 견딤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을 알아버린 나이라서 그 자연스러운 미학에 물드는 중인지도 모를 일이고, 못자리에서 초록 이파리 봄바람 만나 새살 거리는 소리가, 들꽃 그득히 핀 몸빼 무늬 보자기에서 풀어 놓은 아찔한 향기가 가슴으로 옹골차게 파고든다. 따끈한 무언가가 심장으로 흘러들어온 느낌. 오월은 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시절이다.


사람들은 순하고 평탄한 봄 같은 삶을 바라지만, 겨울도 삶의 한 계절이다. 숨 가쁘게 넘어간 고개 끝 절벽에서 만나게 되는 오싹한 숨소리 같은 바람, 익반죽해 쪄 놓은 찹쌀가루처럼 마음 근육이 찰지게 받아 낸 삶의 줄기들이 엮은 그 길 끝에 활짝 피어날 계절이 있다. 그래서 겨울이 견딤이라면, 사월까지는 끊임없이 태어나고 오월부터 자라는 시절이라 말하고 싶다.

 

김지민/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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