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언니, 다음에... 다음... 다음에...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1.05.15 09:39
  • 수정 2021.05.15 09:41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언니는 산을 가장 많이 닮았다.
내 안에 산이 있다.
스스로 말하는 안양 언니.
언제나 인자하고 자상한 언니.
목소리 낮춰 소리 작게 해.
혼내는 것도 딱끔히 소리 낮춰 혼내곤 한다.
 언니 시집가는 웨딩사진은 세상에서 제일 예뻤다.


코팅해서 보고싶을 때마다 꺼내봤다 친구들에게는 언니를 디자이너라고 자랑했다.
언니는 그냥 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어느 봄날, 언니 친구와 함께 언니는 고향으로 놀러왔다. 서울 세련된 향이 언니에게서 났다. 언니 곁은 늘 차분하고 따스했다.


아버지와 개울가에서 나와 함께 물고기 잡는 추억을 사진으로 담아주기도 했다.
다리 길이가 길었으면 미스코리아에 나가도 됐겠다 싶을 정도 예뻤던 안양언니, 안양에서 오랜동안 과일가게를 하고도 살림형편은 펴지 않았다.
 몸은 삐쩍 말라갔고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 생기고도 씩씩했던 언니였는데 언제부턴가마음 깊은 곳에 주름살 때문에 상처받는 언니가 보였다.


아버지 닮았다는 말에는 잠잠했던 언니가 큰언니 닮았다는 말에 발끈했다. 큰언니의 주름살이 먼저 떠올랐을 거다 .
사느냐 바빠 자신에게 소흘했던 삶의 주름살은 상처로 쌓였으리니. 언니와 공원에 약속이 있던 날. 언니를 보고 깜짝 놀랐다. 눈가 주름제거 수술을 했단다. 낯설었다. 눈까지 붉게 충혈 되어 있었다. 나와 하늘공원 걸으며 언니는 자신이 아픈 것을 과거형으로 말하면서 내가 아플 때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서 미안했다. 말했다. 내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을 못하도록...


 언니가 전화하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안부는 내가 궁금한 거 맞지.
궁금한 게 관심이고, 관심은 사랑이겠지.
그조차 버거웠다.


언니, 다음 ... 다음... 다음에.

한동안 마음을 걸어 잠그고 열지 않았다.

그러던 중 힘겨운 날을 꺼내 언니와 함께 산에 오른적 있다.
그곳 협곡은 지옥행처럼 무서워 한번 가고 다시는 가지 않는다.
산을 일주일에 한 번씩 정해 오르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된 때였다. 언니가 내게 "산에 오를 땐 쉬지 말고 걸어야 해." "그래야 쉽게 오를 수 있어." "걸으면서 쉬는 거지." 그러면서 걸음과 호흡 그리고 시간을 하나 되도록 가르쳐줬다.

 


산을 오르는 발걸음은 기도와 같았다.
눈발 날리다 진눈깨비 내리고 비가 되어 내렸다.
앞을 가로막는 안개서린 산길을 걸을 때도 걸음은 일정한 속도를 맞추도록 스스로 훈련을 했다.
언니의 말은 땅에 떨어지지 않았고 들이 쉬고 내 뱉는 호흡호흡마다 세포를 깨우며 내게 살아갈 힘을 심어주었다.


산과 내가 하나가 되도록 산을 쉬지 않고 오르기를 목표 삼으니 산 호흡이 가슴에 심겼다 산을 오르는 그 호흡이 나의 새벽을 깨웠고
나를 일으켜세웠다.
산이 영혼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 이 순간을 당당히 살아내게 하고 있다.

 

이의숙/필수노동자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