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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평생 수절지킨 박여문례 할머니 묘에 추모비 세워

완도읍 대신리 최씨 문중 추모비 세워 고인의 넋 기려, 박씨 할머니 아들 최문학씨도 소문난 효자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07.01.06 11:22
  • 수정 2015.12.15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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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생을 죽은 남편과 자식을 위해 수절한 박여문례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완도읍 대신리 문중에서 묘에 열녀비를 세워 그 뜻을 기리고 있다. ◎ 완도신문

 

완도읍 대신리 뒷산. 시집온 지 3년 만에 혼자되면서 평생을 죽은 남편과 자식을 위해 수절한 고 박여문례(82) 할머니가 잠든 무덤 앞 비문 내용이다.

 

 완도읍 대신리 최 씨 문중에서 최근 세상을 떠난 박씨 할머니의 무덤 앞에 추모비를 세웠다. 세상이 갈수록 각박해져 형제애가 무너지고 패륜이 난무하고 있어 고인의 뜻을 널리 알려 교훈으로 삼기 위해서다.

 

 박씨 할머니는 지난 해 12월, 위암판정 5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63년 전 나이 스무살에 대신리 최씨집안으로 시집온지 3년 만에 남편을 잃었다.  일평생 가난에 허덕이면서도 기개를 잃지 않고 죽은 남편을 기리며, 두 아들을 위해 희생하고 살아온 모질디 모진 전형적인 한국 어머니 표상이다.  

 더욱이 박씨 할머니 아들 최문학(62)씨와 아내 박안자(56)여사 또한, 1981년에 완도읍장과 2000년도에 완도향교에서 효자상을 받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는 효자로 감동과 교훈을 더하고 있다.

이는 박씨 할머니의 기개 있는 온전한 삶이 두 아들에게 많은 가르침이 되었다는 문중 어른들의 말이다.

 

박씨 할머니는 1942년에 완도읍 대신리 최씨 문중 창례씨에게 시집왔다. 결혼생활  시작과 함께 남편을 잃은 슬픔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소중한 두 아들 최문학씨와 동생 고 최정선씨를 얻었다.

 

누구보다도 슬픔이 컸을 박씨 할머니는 슬퍼할 새가 없었다. 가난 속에서 두 아들의  자상한 어머니로 때론 엄한 아버지역할을 하며 올 곧게 성장시켰다.



  ▲ 박씨 할머니 아들 최문학씨도 이마을에서 효자로 소문이 자자하다. ◎ 완도신문
  

“우리 어머니는 다른 어머니들과 달랐어요.” “아무리 가난해도 단 한번도 좌절하지 않으셨던 분이죠.” “아버지를 여의시고 만삭인 둘째와 저를 업고 숯장사와 날품팔이 등 자식들을 굶기지 않으려고 안해본 일이 없을 겁니다.” “심지어 돌아가시기 불과 몇 개월 전 까지만 해도 밭에서 나물을 캐서 팔아 생활비를 할 정도로 였으니까요.”

 

 “어디 그 뿐 입니까” “손자손녀가 대학에 진학할 때마다 백만원씩 학비를 보태줬어요.” “통장에 남은 160만원은 막내손자에게 줄 어머니의 마지막 용돈이었다”며 아들 최 씨는 돌아가신 어머니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했다.

 

박씨 할머니는 생활력만 강했던게 아니다. 자식에 대한 교육도 남달랐다. 아무리 가난해도 아무 대가 없이 얻어먹지 말라고 가르쳤고, 항상 형제간에 우애있게 살라고 했다. 또, 세상을 비굴하게 살지 않도록 매일 가르쳤다.

 

그래서 어머니 생전에 말대꾸 한번, 동생과 말다툼 한번 해 본적 없을 정도로 가정이 화목했다고 한다. 또한, 최 씨는 세 자녀 최재모 (35세)최승희(30세) 최재경(27세)씨를 모두 대학까지 보내면서 어머니가 가르치는 방식대로 자식들을 가르쳤다.

 

아들 최 씨는 평생 자신이 번 돈도 어머니에게 맡겨 필요할 때마다 타다 쓸 정도로 어머니는 집안의 중심이었다. 그것은 어머니 살아생전 최 씨의 가장 큰 행복이었다. 어머니인 박 씨할머니 역시 늘 삶의 보람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런 아들 최 씨도 어머니가 돌아 가시기 전 피치 못할 불효를 저질렀다. 동생 최정선씨가 어머니 돌아가시기 1달 전에 사망했지만 병상에 계신 어머니께 사실대로 알릴 수가 없었다며 끝내 참고 있던 눈물을 흘렀다. 


  최 씨 문중은 “훌륭한 어머니 밑에 훌륭한 자식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학이는 집안이 가난해서 중학교도 못간 아쉬움을 어머니를 탓하기보다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여 살아 왔다고 했다.

 

또, 자녀들에게는 복을 기다리지 말고 만들어가라며 늘 가르쳤을 만큼 어머니의 가르침과 품성을 쏙 빼닮아 세상에 교훈이 될만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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