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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기고 〉광복 63주년을 맞이 하면서...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08.08.14 00:11
  • 수정 2015.11.20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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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문화연구원 손은봉 원장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 삼각산이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 이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 나는 밤하늘에 혼으로 나는 까마귀와 같이 /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

이 시는 「심훈」님이 쓴 '그날이 오면'의 일부이다 광복의 날이 오기만하면 광복을 한시라도 빨리 전하고 싶어 종로의 큰 종을 머리로 쳐 받아 피투성이가 되어 머리가 깨어지고 부서져 죽더라도 기뻐서 뛰며 죽겠노라는...그렇게도 간절히 갈망하고 염원했던 그날! 그 광복을 맞은 지 63년이 되었다.

영국의 비평가인 「G.m바우러」는 그의 시와 정치에서 「심훈 」님의 이 시를 세계적인 저항시로 꼽으면서 일본의 한국통치는 가혹했으나 민족의 시는 죽이지 못했다고 술회했다. 그렇다 일제 36년은 가혹하고 참담했으며 암울했었다.

비록 수사(修辭)적이긴 하지만 눈이 있어도 볼 수가 없었고,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를 못하는 암울했던 날 들이었다. 인권은 유린되고, 민족문화는 말살되었으며,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항거하다 옥중으로 끌려가 모진 고문으로 옥사했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도 온갖 회유를 뿌리치고 산처럼 의연했었다.

어찌 다 여기서 세계사에 지을 수 없었던 침략자들의 잔학상과 만행을 필로써 다할 수 있겠는가. 그 누구도 우리 선열들의 그 의혈(義血), 그 정기를 꺾지는 못하였으니 오직 수탈당한 나라를 되찾겠다는 독립일념 하나로 온 몸을 불사르고 민족 혼을 부둥켜 않았던 것이다. 선열들의 이렇게 숭고한 희생으로 되찾은 조국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이렇게 마음껏 민족정기를 발하면서 자유의 숨을 맘껏 쉬며 세계자유와 평화에 일익을 담당하고 기여하는 나라가 되었다.

극일과 반일 그리고 역사의 교훈

흔히 일본을 가리켜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한다. 이는 지정학적으로는 가까우면서도 그들의 속내는 솔직하지 못하는 것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일본인들은 개인적으로는 대체로 솔직한 편이지만 개인적 차원을 떠나서는 그렇지 못하다.

특히 역사성에 대해서는 더욱 심하다. 일본이 역사교과서 왜곡을 일으키는 것은 이러한 일본인들의 수구적사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역사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역사적 사실과 역사적 평가가 그것이다. 역사적 사실자체에는 어떤 주관적 견해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대하여 객관적 태도를 취하지 않고 엄연히 존재했던 사실자체를 부인하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인들의 속성을 두고 인류학자인 「루스베네딕트. R.Benedict」는 “일본의 문화는 수치(羞恥)의 문화이지 죄책(罪責)의 문화는 아니다” 라고 비꼬았다.

 2차대전에서 패한 미국에 대해서는 수치심을 가질지언정 명치유신이래 특히 2차대전 중 그들에 의해서 이웃민족들에게 끼친 해악에 대해서는 별로 죄책감을 느끼고 있지 않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역사인식을 가지고 후손들에게 잘못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는 것은 한.일(韓日) 21세기 위원회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일본이 한국을 지배한 사실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 21%가 모른다고 답했다. 우리나라 못지 않게 교육열이 높은 일본인 가운데 약 5분의 1이 36년간의 한국통치를 모른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그들에 의해 저질러진 중.일(中.日)전쟁이나 한국침략과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불행했던 전쟁의 야만적 행위를 그들은 진출이라고 표현하면서 그들이 저지른 침략과 만행을 숨기려 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러한 곡필(曲筆)은 문명의 수치(羞恥)중에 수치라는 걸 왜 그들은 모르는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은 일본국민에 대한 속임수요. 이웃나라에 대한 모욕이며 문명인에 대한 야만적 도전이다. 심지어 일본의 지식인들마저도 의식적으로 아시아의 맹주(盟主)운운하는데 이는 그들이 소위 과거 침략의 구실로 삼았던 아시아 공영권의 패권주의의 향수를 아직도 잊지 못해서라면 그러한 망상은 하루 속히 버려야 한다.

역사에서 교훈을 찾지못하면 비록 형상은 달라도 본질에서는 역사가 되풀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일본역사 교과서 왜곡을 경계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 광복63년 우리 스스로 옷깃을 여미는 겸허한 마음으로 역사를 되돌아 보아야 할 때라 생각한다.

나라를 잃어버린 망국의 비극이 일본의 침략전쟁과 약소국에 대해 불리하게 작용한 당시의 국제정세에도 기인하지만 나라를 송두리 채 잃어버린 그 근본 원인은 어디까지나 민족적인 단결과 당시 이 나라 지도층의 자각이 부족하여 시대의 진운에 낙오하고 만 때문이었다.

왕실은 간신들에 둘러싸여 충신들이 역적으로 몰리거나 쫓겨났으며, 양반들은 국가와 사회가 어찌되든 자신들의 안위와 가문과 당파에 눈이 어두웠고 외세에 영합하는 사대주의자들이 창궐하여 날로 기우는 국운이 종국에는 일본의 침략을 자초하지 않았던가?

광복63년 이제 우리에게 일본은 더 이상 극일(克日)의 대상도 반일(反日)의 대상도 아니다. 이웃의 동반자로서 묻고 싶다. 왜 당신들은 아직 까지도 당신들의 역사에 대한 열등감을 그토록 버리지 못하고 있는가? 라고... 그리고 우리스스로에게 특히 정치지도자 들에게 묻고자 한다. 이 나라가 어떻게 독립된 나라인가? 어떻게 되찾은 나라인데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는 나라가 되어서야 되겠느냐고?  진솔한 답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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