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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사진 하나 만들어줘..."

완도읍 서성리 정동애(74) 할머니

  • 김경연 기자 todrkrskan8190@hanmail.net
  • 입력 2011.03.08 20:37
  • 수정 2015.11.19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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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읍 서성리 구,대중병원 뒤 편에 정동애(74) 할머니가 살고 계신다. 할머니 댁을 방문한 기자에게 대뜸 한 마디 던진 말치곤 무게감이 느껴진다. 그렇다.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삶에 대한 흔적을 더듬는 데에는 사진만큼 좋은 것이 있을까.

할머니의 삶에서 흔적이란 처녀적 사진 한 장이 고작이다. 살아 온 날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 예전에 남겼던 흔적의 사진은 챙기질 못했다. 그것도 몸에 항상 지녔기 때문에 남았다.  

정 할머니는 스무살에 결혼했다. 슬하에 자식이 없어 시댁식구들로부터 모진 시집살이를 견디지 못하고 12년 후인 서른 두 살때 무작정 완도로 향했다. 할머니의 고향은 소안도다.

친인척도 있지만 자존심에 연락을 할 수 없었다.  완도읍에서 남의 집 허드렛 일부터 시작했다. 막노동, 핫도그장사 등 안해본 일 없을 정도로 악착같이 살았다. 하지만 생활이 좀체 나아지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결혼 초에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이 도지기 시작했다. 허리와 무릎 통증이 심해 하던 일도 손을 놓아야 했다. 지금은 군지원비 30만원으로 생활하고 있지만 대부분 병원비로 지출된다고 했다.

정 할머니는 "수도,전기요금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써."라고 하면서도 "몸만 안 아프면 빈털터리라도 좋다."고 하소연했다. 유난히도 추웠던 올 겨울에 보일러는 고사하고 전기장판이나 전기난로 하나 커지 못했다. 몸이 오그라드는 차디차고 캄캄한 방을 고집하고 살 수 밖에 없는 이유다 .

정 할머니는 허리와 무릎 통증 뿐 아니라 이도 다 빠져 음식을 제대로 씹을 수 없어 식사하기도 불편하다. 틀니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수백만원이 넘어 엄두를 낼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정 할머니는 한 달에 2번씩 찾아 생필품을 주고 가는 파출소 직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또 부담스럽기도 하단다. 덧붙여 혼자 산지가 오래돼 남자 공무원들이 오면 부끄러워 무슨 말을 하지 못한다는 고민도 털어놨다.

정 할머니에겐 생필품이나 틀니보다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영정사진과 아픈 가슴을 보듬어 줄 따뜻한 이웃이 그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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