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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하느님 아부지가 누구는 차별 하것소"

강제윤 시인- 영광 안마도 기행 - 안마도 기행(하)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1.08.25 08:29
  • 수정 2015.11.1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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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일만 하고 살았응께 손도 발도 오그라졌소
어느새 들녘은 가을이다. 월촌에서 신기리 사이는 온통 나락이 익어가는 논이다. 여름 내내 빳빳하게 고개를 세우고 있던 벼들이 이제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머리에 든 것이 없을 때 고개를 곳추 세우던 벼들. 알곡이 여물고 머리에 든 것이 많아지자 점차 고개를 숙일 줄 알게 된 것이다.

신기 마을 산 아래 초지에서는 소떼가 풀을 뜯고 있다. 20여 마리는 될 듯하다. 신기 마을은 거의 폐촌 지경이다. 도로가의 집들 몇 채만 사람이 살고 마을의 대부분은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들이다. 빈집들은 모두 염소와 닭들 차지다. 이 집도 빈집일까. 인기척 없는 집 마당에 들어섰다 돌아서려는데 사람 소리가 들린다.

"가지 마시오. 나는 사람 구경 못하고 사요. 어서 들어오시오."
백발의 할머니 한 분이 방문을 열고 나그네를 부른다.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한지 다리를 끌며 마루로 나오신다. "서러워 죽겄소. 이러고 살면 뭐 한 다우. 아들 죽고 울고 다니다가 한 다리가 부러져 버렸소." 관절염에 시달린 노인의 손가락들도 모두 비틀려 있다.

"날마다 일만 하고 살았응께 손도 발도 이라고 오그라졌소. 어서 가야할틴디, 안 간께 걱정이오. 안 죽어서 걱정이요." 노인은 광주에 살던 아들을 잃고 벌써 6년째 상심에 빠져 허깨비처럼 살아왔다. 작년에는 광주 살던 딸마저 유방암으로 앞세워 보냈다.

"나 혼자 엎어져 있응께 사람도 아녀요. 날마다 눈물만 흘리며 살고 있소. 밤 낮 앉아서 땅굴만 파고 있소. 그 일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 이렇게 종일 들어앉아 땅굴만 파고 있소. 며칠씩 잠도 안와 헛굴만 파고 앉았소. 자식 보내놓고 놈 부끄러워 집 밖으로도 못나가고 담 안에서만 사요."

할머니는 아들 둘, 딸 열을 낳으셨지만 아들 둘, 딸 넷은 먼저 보냈다. "아들이 참 잘 났었는디. 마흔아홉에 가벼렸어. 내 아들 가버린께 나 찾아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그란께 분하고 짠하제." 할아버지는 일흔 넷에 돌아가셨다.
 

 

 

"영감은 자식들 하나도 안 앞세우고 갔어. 빙 나갔고 여드레만에 가버렸어. 드러눕자 물 한 방울 안마시고 팔일 간 누워있다 그냥 갔어. 자식들 다 앉혀놓고 갔어. 험한 꼴 안보고. 팔자가 좋은 양반 아니오. 참 복도 많은 영감이요."
자식들이 모시겠다고 해도 안가고 병원에 입원 하라 해도 안하고 섬에 혼자 사는 할머니. "내가 뭐 하러 병원에 간다우. 얼마나 더 살라고. 벌써 춥소. 추우면 뼉다구 오그라진께 불 넣고 사요."

백발성성한 할머니는 여든넷.
"내 나이 다 먹고 남의 나이 넷이요."
지금은 덤으로 사는 중이시다. 할머니는 벌써 선산에 묘지도 잡아 놓으셨다. 온 곳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신다. "나는 내 땅으로 갈라고 병원에 안가라우." 걷지도 못하는 불편한 몸이지만 할머니의 집 안 밖은 너무도 정갈하다.

"풀풀 기어 댕기면서라도 걸레 갖고 방 닦고 부엌 닦고 그라요." "그래도 여가 내 집이라 질로 내 맘대로 하고 있응께 편하요. 혼자 있응께 맘 편해요. 라멘도 해묵고, 전기밥솥에 밥도 해묵고. 나 울고 싶으면 울고 먹고 잡으면 먹고."

바람만 불어도 아부지 살려주시오. 그라고 사는 세상 아니요
할머니는 거동도 못하지만 누구 눈치 보지 않고 울고 싶을 때 맘껏 울고 배고플 때 라면이라도 끓여먹을 수 있는 당신 집이 가장 좋다. 그래도 혼자 문 밖 출입을 않고 틀어박혀 살아가니 더러 교인들이 교회에 나가자고 찾아오기도 한다.

"교회 다니라 하면 나가 그라요. 하느님 아부지가 누구는 차별 하겄소. 교회 다니나 안 다니나 아부지 아들이제. 어떤 자식은 자식 아니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다 같은 자식이제. 교회 안 댕긴다고 자식이 아니겠소. 바람만 불어도 아부지 살려주시오. 그라고 사는 세상 아니요. 그라요 내가."

나그네가 그만 돌아가려고 일어서자 할머니는 조금만 더 있다가라고 붙드신다. 그 눈빛이 너무도 간절해서 다시 주저앉는다. 할머니는 자식도 없이 혼자 산다는 나그네가 안쓰럽다.
"자식은 내리 사랑이라. 자식 없으면 사람이 암 것도 아녀요. 내 자식 없으면 누가 전화하고 그런다우."

늙어서 외롭지 않으려면 자식을 꼭 가지라고 신신 당부하는 할머니. 자식이 있다 해서 외로움을 피할 수 있을까. 외롭지 않기 위해 아이를 열둘이나 낳은 할머니도 저토록 처절한 외로움 속에서 죽어가고 있지 않은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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