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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놀러 다니지 말고 괴기배 타등가 염전이나 대녀”

강제윤 시인 - 도초도 비금도 기행(중)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1.11.03 01:22
  • 수정 2015.11.1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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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초도에서 서남문대교를 건너 비금도 해안 길을 걷는다. 비금 들판의 수로는 송치마을 끝자락에서 바다와 합류 된다. 민물과 바닷물이 합수 되는 갯벌은 물고기들의 먹이가 풍부하다. 수문 다리에서 노인 한 분이 낚시를 드리우고 있다. 노인은 요즘 농어촌의 유행인 사발이(사륜오토바이)에 앉아 있다.
“할아버지, 뭘 낚으세요?” “문절이나 잡지.”

그러고 보니 이제 본격적인 문절이(망둥어) 낚시 철이다. 때 만난 숭어들도 수면으로 툭툭 튀어 오른다.
“숭어는 안 잡으세요?” “숭어는 꽉 찼어. 숭어 낚어서 뭣에 쓰게. 바닥에 것도 안 묵는디, 숭어는 안 묵어.” “왜요?” “해금내 나서 안 묵어, 비렁내도 나고.” “저 우에 지방에서는 숭어도 먹던데요?” “그런 디는 알아준디, 이런 디는 안 묵어. 여그 사람들이 안 묵는다는 거제.” “여기 사람들은 숭어는 아주 안 먹나요?” “다 똑같은 디, 바닥에 것은 겨울에는 묵는 디, 여름에는 안 묵어. 히린내 나서, 해금내 나서 안 묵어.”

얕은 갯벌에 사는 숭어나 여름 숭어는 흙냄새와 비린내가 심해 먹지 않는다. 하지만 깊은 바다에서 잡히는 겨울 숭어는 먹는다.
“바다에 나가서는 주로 무얼 낚으세요?” “잡을 때도 있고 못 잡을 때도 있고 그라제.” “뭐가 많이 잡히는데요?” “집이는 몰라. 그런 거 갈쳐줘도.” “갯지렁이는 직접 파서 쓰세요 ?”
“갈가시?” “네” “그라제. 그란디 거세는 붕어 낚시에나 쓰제. 갱물에서는 갈가시를 쓰고.”

여기 사람들은 지렁이를 거세라 한다. 거세는 뭍의 흙에 사는 지렁이. 갈가시는 청거시라고 하는 푸른 갯지렁이다.
“문절이는 어떻게 요리 해 드시는데요?” “인자 등 타가꼬 몰려서 해 묵제. 그냥은 못 묵어. 죽어부럿쓰께. 쌩으로 회해 묵어야 쓴디, 못해 묵으면 그냥 등 타가꼬 몰리제.” “탕으로는 안 끓여 드세요?” “문절이는 여그서 끓여 노면 누가 묵도 안 해. 말려노면 묵은 디.” “맛 없어서요?” “그냥 안 묵어.” “근디 머 하러 여그 왔능가? 누구 알음 있능가?” “아뇨. 그냥 왔어요.” “그런 돈 있으면 집이서 묵고 살어. 이런 데 섬 구겡 해서 머 한다고. 돈이 아깝제.” “할아버지는 비금이 고향이세요?” “비금이 고향이여.” “어느 마을이신데요?”“여그서 가까.”

노인의 오토바이 뒤에는 낚시대가 여러 개다.
“민물 낚시도 하세요?” “바닥에서도 할람 하고, 여그서도 하고. 민물에서는 안 해.” “여기 사람들은 민물고기는 안 먹나요?” “붕어는 묵는디, 붕어는 묵지. 다른 거슨 안 묵어. 냄시 나서. 붕어도 비렁내나. 그래도 존 거시께 묵어.”

 노인은 낚시를 드리우고, 나그네는 구경하고, 둘은 한참을 말이 없다. 노인이 불쑥 침묵을 깬다.
“염전에나 다니게. 염전 대니면 돈 벌제.” “염전에서 일하면 일당은 많이 줍니까?” “소금 가매니로 얼마 묵제.” “....?” “갯수로 묵는다, 이 말이여, 뭔 말을 알아묵도 못하고.”

노인이 버럭 화를 내신다.
“어떻게요?” “갯수로 나나 묵으께. 열가마니 내면 염전 다닌 사람들끼리 여섯개 가꼬 시니 나눠. 하나 앞에 두가마니씩이나 되것제. 염전 임자는 니개 묵제.”

나그네는 노인의 말들을 놓치지 않고 받아 적는다. 노인이 딴죽을 건다.
“그런 거 적지마. 이녘 필요 없는 것 적어갓꼬 대니면 형무소가. 필요 없는 것 적지마. 근디 여그 누구 형제간 있능갑제.” “아니요.”

노인은 아무 연고도 없이 섬마을을 찾아와 배회하는 나그네가 미심쩍다. 노인은 끝내 아픈 곳을 콕 찌른다.
“게을러 갖고 일 안해 묵을라면 돈 쓰지 말고 집이서 가만 있어야 돼.” “집이 없거든요.”
“그라면 괴기 배 타등가. 염전이나 대녀.”

한동안 입질이 없다. 노인은 드리웠던 낚시를 거둬들인다.
“물도 안하네. 물도 안해. 에이 씨발 도로 가야 쓰것다. 본 자리로.”

노인은 사발이를 몰고 자리를 옮긴다. 수문 다리 중간쯤에 앉아 낚시를 던진다.
“점심은 어쨌능가?” “아직 안했습니다.” “그라먼 여그는 식당도 없고. 도초도까정 가야 할턴디. 아님 쩌그 사거리까장 가야헌디.” “잠은 어디서 잤능가?” “도초서요.” “그람 걸어 왔능가?” “예.” “자식들이랑 같이 사세요?” “농사도 없고 하께 나가서 살라고 해부렀어. 나가서 즈그들끼리 멋대로 살라고 하제.”

노인이 갑자기 낚시대를 잡아챈다.
“문절이 온다. 문절이.”

비료를 싣고 가던 트럭 한대가 노인 옆에 멈춘다.
“많이 나깟소.” “잉.” “밥도 안자고 그라고 나끄요?” “밥을 늦게 묵어놔서.”

트럭은 농로를 따라 떠나고 노인은 다시 낚시를 던진다. 노인의 오토바이에는 낡은 목발 두개가 실려 있다. “많이 잡으세요. 할아버지" “조심해 가게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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