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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먹고 사는 것이 무서워요”

강제윤 시인 - 선유도, 무녀도 기행(중)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1.11.24 11:20
  • 수정 2015.11.1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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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 주변의 섬들이 고군산 군도로 이름 지어진 것은 선유도의 옛 이름이 군산도였기 때문이다. 조선 태조 때 수군진이 군산도에 설치 됐다. 세종 때 지금의 군산 땅, 옥구군 북면 진포로 진을 옮기면서 이름도 가져가 진포가 군산포진이 되었고 군산도는 고(故)군산도가 되었다. 본래 군산이란 이름은 바다 한 가운데 산들이 무리지어 있다 해서 얻어진 이름이다. 택리지는 군산도가 옛적부터 산들이 많고 부유한 섬이었다고 소개한다.

“군산도는 전라도 만경바다 복판에 있으며 역시 첨사가 통할하는 진영이 설치되어 있다. 온통 돌산이고 뭇 봉우리가 뒤를 막았으며 좌우를 빙 둘러 앉았다. 그 복판은 두 갈래진 항구로 되어 있어. 배를 감출만 하고 앞은 어장이어서 매년 봄여름에 고기잡이철이 되면 각 고을 장삿배가 구름처럼 안개처럼 몰려들어 바다 위에서 사고판다. 주민은 이것으로 부유하게 되어 집과 의식을 다투어 꾸미는데 그 사치한 것이 육지 백성보다 심하다.”(이중환, 택리지)

백사장 길을 지나 선유 3구로 간다. 선유 2구와 선유 3구를 이어주는 모래톱을 사람들은 명사십리 해변이라 부른다. 백사장 길이는 5리도 못돼는 1.5킬에 불과하니 지명은 비유적이다. 이 모래 톱 위에도 전에 없던 해안도로가 생겼다. 그 길로 자동차와 사발이와 오토바이와 전동카트가 쌩쌩 달린다. 하지만 찻길의 편리함을 얻은 대신 명사십리 해변은 ‘명사’를 잃었다. 모래사장은 바닥을 드러내 군데군데 자갈밭이다. 해안 도로를 내면서 만든 시멘트 옹벽 탓에 더 이상 모래가 쌓이지 않고 유출되는 것이다. 사람 사는 곳에 도로를 만드는 일은 당연하다. 그러나 관광수입으로 먹고사는 해수욕장에 도로를 낸 것은 치명적이다. 여름 피서 철에는 인천 등지에서 모래를 사다가 뿌리는 일이 해마다 반복된다. 그래야 해수욕장이 유지된다. 그나마 남아 있는 모래밭도 갯벌화가 진행 중이니 모래를 보충하지 않으면 명사십리 해변은 머잖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선유 3구 밭 너머 마을에서 망주봉을 돌아가면 새터 마을이다. 이 마을 망주봉 중턱에 오룡묘가 있다. 예전에는 길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숲이 울창해져 길이 사라지고 없다. 바위에 매달린 밧줄을 잡고 암벽등반을 한 뒤에야 간신히 오룡묘에 이를 수 있다. 오룡묘는 1990년, 마지막 무당이 죽은 뒤부터 오랫동안 돌보지 않고 방치되어 있다. 오룡묘 당집을 비롯한 선유도의 전통 신앙은 이 섬에 유입된 기독교의 탄압으로 소멸 되고 말았다. 오룡묘에는 아직도 두 개의 당집 건물이 남아 있다. 하지만 아랫 당에 봉안 되었던 오구유왕, 명두 아가씨, 최씨 부인, 수문장, 성주 등 다섯 토착신의 화상은 도난당하고 없다. 당에는 근자에도 공을 드리고 간 흔적이 남아 있다. 규모가 작은 윗당은 임씨 할머니 당이다. 윗당에 모시던 산신과, 칠성님, 임씨 할머니 세분의 화상도 도난 당한지 오래다. 윗당은 천장에 구멍이 뚫리고 마루는 뜯겨져 아주 폐허가 되고 말았다. 허물어져 가는 당집은 노거수 그늘에 파묻혀 소멸의 시간을 기다린다. 가여운 신들.

섬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섬사람들의 수호신으로 살아온 토착 신들. 당집은 오랜 세월 섬사람들의 안전을 지켜주고 풍어를 이루도록 도와준 신들을 모시던 신전이다. 지금 당집에 살던 신들은 외래 신을 섬기는 자들에게 쫓겨 사라지고 말았지만 토착 신들이야말로 섬사람들의 현세 삶에 이로움을 주던 신들이 아닌가. 하지만 섬사람들은 더 이상 토착 신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주인을 기다리는 봉우리, 선유도의 주산 망주봉의 이름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 버전의 전설이 내려온다. 하나는 충신 버전이다. 선유도에 유배된 관리가 매일 산봉우리에 올라 북쪽의 한양에 있는 왕을 사모하였다 해서 망주봉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또 하나는 번외 버전이다. 이 버전은 정감록에 젖줄을 대고 있다. 정감록은 이씨 조선이 멸망한 뒤 정도령이 계룡산에 도읍하여 몇 백 년을 다스리고 그 후 조 씨의 가야산 도읍 몇 백 년이 계속된 뒤 범씨의 완산 도읍이 시작 된다고 예언한다.

선유도 망주봉은 범씨 완산 도읍 천년왕국의 섬나라 버전이다. 그 천년왕국의 주인 범씨 왕을 기다리는 산이 망주봉이다. 망주봉의 유래는 아무래도 첫 번째 버전이 사실에 가까울 것 같다. 하지만 정감록의 두 번째 버전이야말로 진실에 더 가까울 것이라고 나그네는 믿는다. 과거에 섬은 착취와 수탈이 없는 이상향으로 자주 꿈꾸어지곤 했다. 한양에 사는 양반들의 임금이 아니라 진정한 백성의 나라를 기다리는 민중들의 열망이 망주봉의 전설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니었을까.

선유 1구 마을은 전형적인 어촌이다. 마을에 상업시설이 거의 없다. 여름 피서철에나 조금 북적거릴 것이다. 마을 골목길을 들어선다. 폐가인가 싶을 정도로 쇠락한 어떤 집 마당을 기웃거리는데 부엌에서 할머니 한분이 나오신다. 할머니는 타작이 끝난 들깨 단을 창고에 들이고 있다. 겨울 난방을 위해 땔감을 비축하는 것이다.
“먹고 사는 것이 무서워요. 먹을 것은 못 먹지. 허리는 아프지. 돈도 없지. 영감도 없고.”

자식들은 모두 뭍에 나가 살지만 어미를 돌볼 여력이 없다. 노인은 “아이구 허리야, 아이구 허리야.” 연신 고통에 찬 신음을 뱉어내면서 땔감을 옮긴다. 이 섬에서도 혼자 사는 노인들의 삶이 가장 고단하다. 독거노인들은 경제적 궁핍과 고질적인 병마에 시달리는 섬의 극빈층이다. 관광 수입도 이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다. 섬에서도 정부의 정책은 대게 힘 있는 사람들을 위해 시행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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