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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저 신령님들 마귀가 아녀,다들 우리 조상님들이지"

강제윤 시인 - 옹진 문갑도 기행 - (하)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2.01.12 11:33
  • 수정 2015.11.1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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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이야기 나누는 사이 동네 할머니 한 분이 더 와서 수수 밭 일을 거든다. 너무 오래 일을 방해 한 것 같아 사진 한 장만 찍자고 하니 노인이 흔쾌히 허락 한다. 노인의 품이 멋있다. "젊어서는 한 가락 하셨겠어요." 노인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입을 뗀다. "어떻게 보면 내가 제대로 한가락 하고 살긴 살았지." 노인은 다시 자리에 앉으며 이야기를 잇는다.

노인도 어려서는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다. "이십년을 예수 믿었는데. 왜 믿었냐 하면." 지금은 무인도가 된 저 건너 선갑도에 스님 한분이 암자를 짓고 살았었다. 노인은 아홉 살 때 스님의 절로 보내졌다. 거기서 6년을 살았다. 동자승 생활을 하며 맨날 불공을 드렸지만 부처님 보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15살 때 다시 문갑도로 왔다. "그때부터 예수를 믿었어. 그때 섬에 처음 교회가 생겼고 나도 교회에 댕기기 시작했지. 그러다 늦게 군대를 갔어. 27살 먹어서 갔으니까."

군대에 가서는 연대장 당번병을 하며 교회를 다녔다. 그런데 이년 동안이나 이유 없이 아팠다. 제대를 하고 나서도 역시 이유 없이 또 삼년을 아팠다. 무병이었다. "나도 모르게 아픈 거여. 꿈에 꼭 옛날 할아버지가 보이고. 뚜렷하게 보여." 꿈이 아니라도 낮에도 눈만 살짝 감았다 하면 갓 쓴 할아버지가 바로 옆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시름시름 앓다가 죽기 직전까지 갔다.

사람들마다 다 죽을 거라고 했다. 외할아버지가 덕적도에서 목사로 사역하고 있었다. 이모도 독실한 교인인데 무당집으로 손을 끌고 갔다. 무당은 옛날 할아버지 조상님이 찾아오는 거라 했다. 믿기지 않아서 인천으로 갔다. 인천의 무당집 열 곳을 돌아 다녔다. 다 똑같은 소릴 했다. 인천에서 제일 큰 만신을 찾아갔다. 처음 만난 덕적도 무당에게 신 내림 굿을 받으라 했다. 덕적도 서포리의 무당 할머니를 모셔다 굿을 했다. 굿이 끝나자 거짓말처럼 병이 나았다.
 

 

내림굿을 받았지만 무당이 된 것을 인정하기 싫었다. 그래서 10년 동안 죽어라 일을 했다. 신 받은 것을 묻어둔 것이다. 그러다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다. 자다가도 모를 소리를 하고 다른 사람 일을 쑥쑥 내뱉는데 그게 다 맞았다. 그 길로 다시 인천으로 갔다. 큰 무당집을 찾아가 얻어먹고 굿 수발을 하며 3개월을 살았다. 신어머니와 신아들이 되었다.

신어머니는 굿을 하다가 한 거리씩 하라고 나누어 주었다. 그 후 신어머니와는 20년 넘게 인천과 문갑도를 왕래 하며 살았다. 신어머니는 10년 전에 돌아가셨고, 그 후로 인천의 굿당과 문갑도를 오가며 만신으로 살았다. "작두를 타고 굿을 크게 해. 내가 큰 신을 모시는 사람이야. 숨기려니 힘들어. 처음에는 조상님들이 들어오고, 그 다음에는 산신령, 별별 신들이 다 들어와. 일월성신이 들어오고 옥황상제도 들어오고, 각 나라 장군들도 들어오고. 신들이 들어올 때 호명을 하고 들어오니까 이름을 알지."

노인은 김현기(73세) 만신, 문갑도 무교(巫敎)의 마지막 사제다. 지금도 굿을 할 때면 마을 경로당 앞에서 작두를 탄다. 하지만 교회 다니는 교인들과도 친하게 지낸다. 수수밭 일을 도우러 온 할머니 두 분도 교회에 다닌다. 교인들이 서로 다른 교회 교인들과는 척을 지고 살면서도 무당인 노인과는 꺼리낌이 없다. "내가 믿음 가지고 다투지 말자 그래." 처음에는 무당이 된 것을 탄식도 많이 하고 살았지만 이제는 복으로 여긴다. "천지신명이 나를 점지 했잖아. 모래알같이 많은 사람 중에 나를 찍은 것만도 고마운 일이 아닌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겨울이면 인천의 굿당에 가서 무당들을 거느리고 큰 굿을 주관하곤 했다. 지금은 섬에만 살면서 개도 기르고 돼지도 키우고, 고구마, 수수, 메밀 농사나 짓는다.

노인의 굿당은 당산 아래 있다. 문갑도의 올림푸스산, 당산은 여전히 신성하다. "산신령님이 지호 하니까 아무도 못 들어가." 섬사람들 누구도 선뜻 들어가지 못한다. 만신인 노인만 제를 지내러 들어간다. 예전에는 마을 당산제가 제법 컸었다. 해마다 마을에서 기르는 소를 잡아서 통째로 바쳤다. 교회가 들어오면서 차츰 사라져 갔다.

요즈음에는 노인 혼자 겨울에 길일을 받아 제를 지낸다. 소를 잡을 수 없으니 인천에서 쇠고기를 사다가 바친다. "나는 쌈을 해도 절대 악담을 안 해. 내가 악담을 하면 그 사람한테 안 좋거든. 내 몸 안에 만 신명을 모셨으니 내가 한마디 하는 게 만 마디 하는 거야. 그러니 안 좋지. 아무튼 누가 됐든 다른 사람에게 악담을 하면 못써. 악담을 하면 자기부터 악담을 맞는다 그랬잖아."

나그네는 노인을 따라 굿당으로 간다. 굿당 안에는 참으로 많은 신들을 모셔져 있다. 본산 신령님, 임경업 장군신, 눈만 감으며 보이던 삿갓 쓴 조상 할아버지, 강릉 김씨 입도조 할아버지, 장씨 할머니, 옥황상제, 일월성신, 성수 장군, 일월 도신장, 칠석님, 팔선녀, 백마여장군까지 신전의 신들은 날마다 노인의 치성을 받는다. 노인은 굿을 할 때 타는 작두를 꺼내 보여준다. 신 내림 받을 때부터 수 십 년을 탔다는 작두지만 칼날은 여전히 날카롭다. "나도 인간이잖아. 그냥 있을 때 작두날을 보면 무섭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해.

하지만 신명이 오르면 아무렇지도 않아." 나그네는 굿당의 신령님들께 삼배를 올리고 굿당을 나선다. 절에 가서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성당에 가서 예수님께 기도를 올리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나는 어떤 신도 믿지 않지만 어떤 신도 배척할 생각이 없다. 노인은 떠나는 나그네를 배웅하며 혼자 말처럼 한마디 하신다. 맺혔던 응어리가 터지는 소리. "저 신령님들 마귀가 아녀, 다들 우리 조상님들이지. 마귀라고 하는 소리 들으면 답답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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