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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눈와도 곡석이 연대 때맞춰 일해줘야 열제"

강제윤 시인 - 진도기행(3)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2.05.31 13:21
  • 수정 2015.11.1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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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팽목항 부근에 남도석성이 있다. 성은 고려 원종 때 배중손 휘하의 삼별초가 해안 방어를 위해 쌓은 것이다. 성 안에는 누대에 걸쳐 사람들이 살아온 마을이 남아 있다.  마을 안길 담장에 핀 능소화가 곱다. 성의 안길, 임시로 복원된 관아 건물 옆 집 마당의 텃밭에서 할머니 한분이 들깨 사이에 돋아난 풀을 뽑고 있다.

"옛날에는 호랭이가 얼마나 많았든지 사람도 물어가고 개도 물어가고 그랬다 해요." 진도는 예로부터 호랑이가 많은 섬으로 유명했다.
"하도 오래 산 게 존 세상도 보고. 너무 너무 존 세상인디. 하도 명이 긴 세상이라." 노인은 길쌈을 못하면 옷도 못 입고 다니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연신 세상이 좋아졌다고 하신다. 하지만 명이 길어서 탈이라는 그 말씀에는 한 생의 고단함이 온전히 묻어난다.

노인은 텃밭 한 귀퉁이에 여러 종의 약초도 심었다. 진도의 산야에는 약초가 널렸다. 진도뿐이랴. 실상 우리의 산야에 나는 풀이나 나물 치고 약초 아닌 것이 있던가. 홍주 만드는데도 쓰는 지초는 진도에서 만병통치약으로 통했었다.

"애들이 체하면 지초라고, 그놈 갔다 놋그릇에 넣고 화로 불에 올려 참기름하고 우려서 애기 떠먹이면 났고, 엄마가 의사였지라." 과거에는 길러먹는 채소에도 기생충이 많았다. 이 또한 '엄마 의사'가 퇴치 시켰다.

"배추를 생으로 쌈 싸 먹고 체독에 걸리면 그 벌레가 사람 피를 빨아먹어. 그냥 두면 죽어라우. 한디 옥수수수염 대려 먹으면 나섰어." 병이 있으면 병을 났게 해주는 약도 곁에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옛날에는 약만 먹고 살았어. 도라지랑 더덕이랑 맨날 노물로 먹고 살았지."

노인은 그런 약초들을 캐다 시장에 나가 팔아 아이들을 키우고 교육시켰다. "잘 사나 못 사나 부자로는 못 살지만 못 된 일 안하고 사는 것만도 고맙지. 팔십 묵은 노인, 두 늙은이 사는데 이제 나가게 된다우." 이 오래된 마을도 머잖아 철거될 예정이다. 정부는 남도 석성의 주민들을 이주 시키고 성 안의 여러 관청들을 복원해 관광지로 만들 계획이다.

 

"정부에 팔렸어라우. 관광객 오면 구경하라고 한다요. 나가라고 할 때까지 이런 거 해먹고 살라고 남아 있소." 노인은 집 없이 사는 민달팽이가 뜯어먹은 깻잎을 들추며 혀를 찬다.

"벌게(벌레)가 요케 부애나게 하요. 민달팽이라고 공산당 넋이라고 한디. 공산당 보다 더 징해." 지금은 민달팽이가 보이지 않는다. 뙈약볕을 피해 어디로 숨어버린 걸까. "띠걸때 나오면 죽으께 지가 못 나와라우. 밤에만 나와라우. 농약 뿌래도 안죽어라우. 그라께 공산당 넋이라 하제."

낮에는 어디 숨어 있다 밤에만 출몰한다 해서 민달팽이를 빨치산, 공산당 넋이라 부르는 듯하다. 게릴라전의 명수, 민달팽이. "애기맨치로 재워 놓고. 할애비는 재 놓고 나는 풀을 뽑소." 할아버지는 낮잠을 주무시고 할머니는 풀을 뽑는 남도의 한낮. 평생을 그리 살아왔던 터다.

"내가 풀을 매서 드내빌면, 매번 또 돗는디 머하러 또 뽑소 그랍니다. 안 매고 놔두면 풀이 덮어 불면 열매가 안 여는 줄도 모르고 그라요. 열분 백분이나 매도, 얘기만 하고 있어도 이놈이 커 갔고 깨 못 열게 하는디 안 매면 쓰것소."

할머니는 팔순이 넘어서도 속없는 할아버지를 그리 미워하지 않는 눈치다. 그저 징글징글한 풀과 벌레가 야속할 뿐이다. 풀을 나무라던 노인이 다시 더위를 피해 낮잠을 자고 있을 달팽이를 나무란다. "에라이 징한 놈의 짐승아. 민달팽이, 고동달팽이, 깨밭은 민달팽이 그것이 원수여라우. 원순을 싹뚝 짤라 불고. 부애가 나것소? 안 나것소?"

노인은 풀을 뽑으면서도 처음 본 나그네가 끼니 거르고 다니는 것이 걱정이다. 아들 같은 나그네에게 "어르신, 뭐 좀 잡수고 가야 할텐디"하며 연신 미안해하신다. 자식들은 어머니가 햇볕 뜨거운 한낮에 일하는 것이 걱정이다. 노인은 8남매를 낳아서 길렀다. 아들 셋, 딸 다섯 8남매. 휴가 때 놀러 와서도 자식들은 내내 걱정스럽게 어머니에게 당부했더란다.

"볕날 때 뜨건 데 일하지 마시오 그럽디다. 그라니까 내가 그랬소. 눈 와도 곡석이 연대. 때 맞춰 일해 줘야 열재. 즈그도 인사로 하는 말이제. 그 뜨건데 일하니께."
텃밭에는 기름 짜던 피마자도 심었다. "씨는 안믿진다고 여기 하나 심겨 났지." 자녀들은 매일 같이 안부 전화를 해온다.

"자석들 전화하는 것이 효자제. 이녁 자석들 킬라께 부모 건사할 수가 있어야제."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식과 함께 사는 노인들이 부럽기도 하다.
"부모하고 사는 메느리, 아들이 젤 복 있는 사람이제. 부모한테 불효자는 어서 복을 받을 데가 없어."

극약인 부자도 심었다. 독초인 저건 어디다 쓰시려는 걸까. 한약재로 쓰지만 그 독성 때문에 절대 단방 약으로는 쓰지 않는 약초다.

"그냥 심어 봤소. 부자는 돼지새끼하고 과 묵는다 합니다."
나그네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노인의 손은 노는 법이 없다. 들깨 그늘의 풀포기를 뽑아낸다. "워매 워매, 놈의 그늘에서도 요케 크냐. 징한 놈의 풀아."

들깻잎 그늘 덕에 자라면서 들깻잎의 성장을 방해하는 풀을 나무라는 말씀이다.
노인은 사립을 나서는 나그네에게도 축원을 잊지 않으신다. "복 많이 받으시오." 노인의 마음은 어미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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