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기획취재> 폭탄을 머리에 이고 사는 섬

강제윤 시인 - 군산 명도, 말도, 방축도(하)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2.08.23 10:27
  • 수정 2015.11.11 10:47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명도에서 어선을 대절해 방축도로 건너 왔다. 여기도 홍합작업이 한창이다. 올해의 거의 막바지 작업이다. 명도와는 달리 이 섬은 권리을 팔지 않아 주민들 모두에게 채취권이 있다. 홍합은 20킬로 한 포대 2만 원 정도에 수집상에게 넘겨진다. 많이 따는 사람은 하루 일곱 포대 까지 따기도 하지만 보통은 서너 개다. 명도, 말도, 방축도는 세 섬이 다 행정구역상 군산시 옥도면 말도리다. 같은 옥도면에 속한선유도와는 달리 고군산군도 관광산업의 혜택을 거의 못 누리고 산다.

해상 유람선에서 구경하고 가는 장자할아버지 바위나 거북 바위, 시루 떡 바위, 남대문 바위, 책 바위, 쇠코 바위 등의 절경이 모두 이 섬들에 속해 있다. 하지만 매정하게도 유람선은 선유도에만 정박했다 돌아간다. 관광객이 뿌리고 가는 돈이 이들 섬까지 날라 오지 않는 것이 주민들은 못내 섭섭하다. 그래서 섬사람들은 방축도, 말도, 명도 세 섬이 다리로 연결되기를 소망하지만 기대는 난망하다.

해변의 절벽에는 전망대로 만든 정자가 하나 있다. 정자 옆길을 따라 산을 오르니 10여 분 만에 정상이다. 섬의 가장 높은 자리가 통신사의 기지국 차지다. ‘SK텔레콤 방축도 기지국’, 옛날 이 산의 정상은 나무와 바위들의 자리였다. 무선국 철탑이 그 자리를 대신 한 것은 이 섬의 수호자가 바뀐 것을 알려주는 징표다.

섬의 수호자는 더 이상 용왕이나 산신령이나 나무와 바위의 정령이 아니다. 전화다. 과거 섬에서는 생사에 위급한 일이 생기면 누구든 신이나 정령들에게 기도했다. 그들은 섬의 절대자였다. 이제 그들은 무력하다. 섬사람들은 죽음 앞에서도 더 이상 그들을 찾지 않는다. 신 대신에 찾는 것은 전화기다. 신들은 응답이 없지만 전화기는 바로 응답을 준다. 오늘날 이 섬의 진정한 신은 전화기다. 산정의 기지국은 전화 신을 모시는 신전이다.

산을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다. 산길에는 등반을 돕기 위한 밧줄이 놓여 있다. 한손으로 밧줄을 잡고 가다 문득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잘려나가 죽은 나무 밑 둥에서 새순이 돋아나고 있지 않은가. 눈을 의심하며 가까이 다가가 본다. 환시였다. 새순은 죽은 나무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무 가지가 죽은 나무 밑 둥에 붙어서 자라고 있는 것이다. 부활의 목격담도 저런 것일까. 가까이 다가가 세밀하게 관찰하지 않았다면 저 죽은 나무는 부활의 나무가 됐을 것이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파고들면 벗겨지지 않는 신비의 껍질이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신비함에 이끌려 사는 삶을 우매하거나 그릇된 삶이라고 질책할 수 있을까. 실체도 없는 신비의 본질은 믿음이다. 실상은 신비가 아니지만 사람은 신비를 믿으면 죽음의 목전에서 살아 돌아오기도 한다. 신비란 허망한 것이지만 그 허망함을 믿는 힘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이 우주의 역설. 어찌할 것인가. 궁극으로 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말도는 벌써 홍합 철이 끝났다. 이제는 바지락을 캐서 뭍으로 보낸다. 여객선은 마을 입구 선착장에 닿지만 어선들이 정박하는 포구는 마을과 떨어져있다. 섬은 느리게 걸어도 30분이면 일주할 정도로 작다. 마을의 서쪽 고개 너머에 말도 등대가 있고 그 아래 포구가 있다. 옛 고갯길로는 더 이상 사람이 다니지 않는다. 해안도로를 따라 걷는다. 겨울에 섬을 떠나 있던 선원들이 돌아와 그물을 손질하며 출어를 기다린다. 무인도 '큰모가지'와 '작은 모가지'는 방파제 공사로 말도와 이어져 경관이 훼손 됐다.

하지만 섬사람들에게는 풍경보다는 대피항이 생존에 더 가까운 것을 어쩌랴. 그래도 포구는 호수처럼 아늑하고 아름답다. 뚝 길을 따라 걷는데 인기척에 놀란 숭어 떼 한 무리 후다닥 물속으로 도망친다. 숭어들은 떼 지어 몰려다니며 수면의 먹이까지 탐한다. 포구의 수면에는 늘 유출된 기름이 둥둥 떠다니기 마련이다. 숭어가 그 기름까지 먹으니 어떤 숭어회에서 더러 기름내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오늘 말도의 하늘과 바다는 평화롭다. 하지만 이 평화는 참 평화일까 거짓 평화일까. 말도에서 22 킬로미터 거리에 공군 사격장 직도와 소직도가 있다. 1971년 사격장이 들어서면서 섬에다 끊임없이 폭탄을 쏟아 부었다. 해발 66미터 높이의 섬이 지금은 25미터 정도로 낮아졌다. 사격장이 되기 전까지 말도, 방축도, 명도 섬 주민들에게 직도는 황금어장이었다. 1971년 이후 직도 반경 18킬로 이내의 해역에서 모든 조업이 금지 됐다.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40여년 가까이 머리에 폭탄을 이고 살았다. 전투기의 소음과 폭격의 진동으로 고통당했으며 항상 오폭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근자에는 매향리 미군 사격장이 폐쇄되면서 미 공군의 사격장까지 옮겨왔다. 군산시는 정부지원금 3000억 원에 직도와 섬 주민들의 생명을 담보 잡혔다. 자동 채점 장치(WISS)가 설치된 직도에는 연습탄이 투하되지만 바로 옆의 소직도에는 여전히 살상용 폭탄이 투하된다. 직도 사격장은 명목상 한국 공군 사격자이지만 실상은 4개월 마다 순환 배치되는 미 공군의 국제 사격장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의 아비노 미군 기지와 미동부의 쇼오 공군 제 8 전투 비행단, 알래스카 비행단 등이 4개월간 폭격 연습을 하다 돌아갔거나 폭격 연습 중이다. 아파치 헬기도 이 섬에 폭격 연습을 하고 간다. 자주 잊고 살지만 영속되는 삶은 어디에도 없다. 영원처럼 느껴지는 삶도 그 끝은 언제나 순간이다. 언제 폭탄이 떨어질지 모르는 섬에 살면서도 사람들은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다. 만성 질환처럼 굳어져버린 된 위험.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다. 공포도 습관이 되면 더 이상 공포가 아니다. 보다 큰 공포가 오기 전 까지 사람들은 불안에 떨지 않는다. 사람들은 머리위에서 폭탄이 터지는 순간에야 비로소 공포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