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칼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언론의 역할

김주언 전 한국기자협회장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2.09.26 14:06
  • 수정 2015.11.20 21:21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언론의 가장 커다란 역할은 감시기능이다. 권력기관의 비리나 부도덕성을 고발하고 정책의 잘잘못을 따져 국민의 혈세가 진정 국민을 위해 쓰이는지 감시해야 한다. 혈세가 엉뚱한 곳에 쓰여 낭비되는지 따져서 국민에게 전달할 의무가 있다. 더 나아가 국가폭력에 의해 인권이 침해되거나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핍박당하는 사례를 찾아 모든 국민이 평등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갈 책임이 있다. 따라서 권력과 언론은 항상 길항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권력은 언론을 장악하여 자신의 비리를 감추고 정권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려 한다. 언론은 때로는 권력의 눈치를 보고 권력이 쥐어주는 당근에 빠져 자신의 의무를 망각하기도 한다.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은 무엇보다도 먼저 언론을 정권에 예속시켰다. 군사정권 하에서 우리 언론은 ‘제도 언론’이란 좋지 못한 별칭을 얻었다. 이러한 언론통제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KBS와 MBC, YTN, 연합뉴스 등 언론사 노조들이 이에 반발해 최장기간 파업을 벌인 것도 이 때문이다.

군사정권이 언론통제 도구로 활용한 수단은 수도 없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현행법을 어겼다며 기자를 구금하거나 고문 폭력 등을 통해 육체적 고통을 가하는 방식이다. 군사정권 시절 많은 기자들이 이른바 ‘남산’으로 불리는 안전기획부(중앙정보부, 후에 국가정보원으로 개칭)에 끌려가 고문을 당해야 했다. 더 나아가 비판적 언론인을 해고하기도 했다. 이러한 탄압방식은 이명박 정권 들어서도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 공정보도를 내세워 파업을 벌인 언론사 노조 간부들을 무더기로 해고하거나 중징계 처분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이른바 형법과 민법상의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해 언론인들을 법정에 세우거나 수억원대의 위자료 청구소송으로 곤욕을 치르게 했다. 오보로 인한 명예훼손죄를 남용한 대표적 사례로는 MBC TV의 ‘PD 수첩’을 들 수 있다. 정부 고위 관리들이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다룬 ‘PD 수첩’ 제작진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해 법정에 세웠다. 결국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으나 그동안 제작진은 피고인석에 서야 하는 모욕에 시달려야 했다.

명예훼손죄의 남용은 중앙정부만 악용하는 것이 아니다. 지방정부도 마찬가지이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자신의 비리를 폭로한 풀뿌리 신문사들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이를 악용하기도 한다. 때로는 고소하겠다는 압력을 가해 비리사실을 보도하지 못하도록 한다. 10여년 동안 지방자치단체의 각종 정책을 감시하며 지역주민의 파수꾼 역할을 해온 완도신문이 겪었던 과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완도신문의 비판적 보도에 대해 완도군수와 완도군은 2007년 1월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완도신문을 고소했다. 그러나 그해 6월19일 무혐의 처분을 받았으나 완도군과 완도군수는 다음해 또다시 기자와 편집국장을 고소했다. 이번에는 3년여의 법정다툼 끝에 2010년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군사정권이 언론통제 수단으로 자주 사용하는 것이 언론사에 경제적 압력을 가하는 방식이다. 수입을 주로 광고에 의존하는 신문사들에 광고주를 협박하여 광고를 게재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신문사 경영을 어렵게 하는 것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 동아일보 광고사태가 그것이다. 결국 신문사주는 권력과 야합하여 비판적 기자들을 대량 해고하고 말았다. 이러한 광고압력은 이명박 정부에서도 강도는 약하지만, 비슷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정부광고를 자신에 우호적인 언론사에만 집중 게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도 공공연히 자행된다. 완도군은 2007년 이후 지역주민의 입장에서 완도군의 정책 집행을 감시하여 비판적 보도를 해왔던 완도신문에 광고압력을 가했다. 경영형편이 어려운 영세신문사에 주민의 혈세로 집행되는 홍보비를 군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집행하지 않는 것은 폭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완도군은 자신에 우호적 신문사에만 광고를 게재하고 비판적 신문사에는 광고를 게재하지 않는 이유를 주민에게 확실하게 알려야 한다.

완도군은 군수부인이 검찰로부터 기능직 공무원 특채와 관련하여 기소돼 1심 판결을 앞둔 시점에 완도신문과 관계개선을 명분으로 지난해 말과 올해 초 2건의 광고를 집행했다. 그러나 완도신문이 군수부인의 실형 8개월에 추징금 1,000만원의 판결을 받은 사실 결과를 보도하자 어떤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이후 다시 광고차단한 뒤 아직까지 광고를 주지 않고 있다.

신문이 지방자치단체장 가족의 법원판결 결과를 보도하여 주민에게 알리는 것은 주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도 당연한 책무이다. 이를 이유로 경제적 압력을 가하는 것은 새로운 언론통제방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군사정권의 가장 악랄한 언론통제 수법은 이른바 ‘보도지침’을 하달하는 것이다. 박정희 정권은 유신선포 이후 중앙정보부 등 기관원들을 신문사 편집국과 방송사 보도국에 상주시키면서 보도지침을 내려 보도내용을 시시콜콜하게 간섭하는 것이다. 자신에 불리한 사항은 보도를 금지시키고 정권 홍보를 위해서는 아무리 뉴스가치가 없는 사안이더라도 크게 취급하도록 했다. 이른바 군사정권 시절의 ‘땡전뉴스’가 그것이다. 신문 1면 왼쪽에는 항상 대통령 동정을 싣는 ‘로열박스’가 있었다.

필자는 전두환 정권 시절 보도지침을 폭로했다가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 적이 있다. 편집국에 있던 보도지침 사본을 당시 재야운동단체인 민주언론운동협의회에 전달해 ‘말’지 특집호를 통해 공개했다. 전두환 정권은 필자와 말지 특집호 제작에 관여한 김태홍 신홍범 두 언론계 선배를 외교상 기밀누설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우리들은 1987년 6.10시민항쟁 직전인 4월3일 집행유예 등으로 풀려났다. 그 뒤 9년동안의 법정투쟁을 통해 마침내 대법원에서 무죄확정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구속기간 중은 물론 그 기간 동안의 심적․물적 고통에 대한 보상도 받지 못했다.

언론은 권력의 홍보도구가 아니다. 중앙권력이나 지방권력을 막론하고 언론을 권력의 나팔수로 만들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이른바 ‘관영매체’를 만들려는 시도이다. 때로는 물리적 폭력을 동원하기도 하고, 때로는 당근과 채찍을 주면서 언론을 회유하려고 했다. 법과 제도를 통해 언론의 입을 틀어막기 위한 시도도 지속됐다. 최근 들어서는 과거 독재정권처럼 강압적인 통제는 사라졌지만, 합법을 가장한 ‘저강도 통제’는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통제에 맞서 싸우며 언론의 자유를 지켜내는 것이 참언론의 모습이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언론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언론은 현대사회에서 여론과 의사소통을 위한 통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언론이 사적 소유라 하더라도 사회 전체에 대한 책임을 진다.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에 복무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로부터 여론소통의 통로를 위임받은 언론은 암묵적이든 명시적이든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언론의 자유는 민주사회의 필요충분조건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자유는 헌법으로 보장돼 있다. 한국에서도 헌법 제21조에 언론의 자유를 명시해 놓고 있다. 따라서 언론의 자유를 훼손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위헌이라고 할 수 있다.

환경단체의 주요 역할이 환경감시라면, 언론은 권력기관의 잘못을 파헤쳐 널리 알리는 숙명적 기능을 갖고 있다. 이는 풀뿌리 시민단체(NGO)의 역할과 맞닿아 있다. NGO들이 주민을 대신하여 지방자치단체의 살림살이를 감시․견제하고 올바른 정책제안을 하는 것처럼 언론도 마찬가지 기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언론은 대안을 제시하기 보다는 비리를 고발하는 역할을 우선시하고 있다. 따라서 언론은 시민단체들의 정책제안을 주민에게 널리 알릴 수 있도록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시민단체들도 권력기관이 언론자유를 훼손하려는 어떠한 시도에 대해서도 맞서 싸워야 한다. 언론과 시민단체는 주민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여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러나 불행하게도 현재 완도에 군민 편에 서서 일한는 변변한 사회시민단체 하나 없다고 한다. 완도신문이 완도군이나 기득권층들로부터 뭇매를 맞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완도신문이 지방권력에 맞서 싸우기에는 힘이 딸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군민독자들이 지지한다면, 언론자유를 훼손하려는 어느 세력도 물리칠 수 있다.

언론의 생명력은 정치권력 보다 강하다. 정치권력은 임기가 정해져 있고 주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그만 사그라진다. 여론을 주도하는 언론과 양심세력들이 힘을 합쳐 주민을 대변하면서 권력남용을 감시하는 것,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