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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사람 사는 거 점점 힘들어 큰 일 낫수다.”

강제윤 시인 - 강화 민통선 섬기행(상)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2.11.08 13:27
  • 수정 2015.11.1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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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외포리에는 두 개의 여객선 선착장이 있다. 하나는 석모도행 전용 선착장이고 또 하나는 주문도와 볼음도, 아차도 항로의 선착장이다. 이 바닷길에도 카페리가 다닌다. 작은 섬으로 가면서도 사람들은 자동차에 대한 미련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철부선 갑판은 뭍에서 싣고 가는 자동차들로 빼곡하다. 철부선이 허허바다로 나간다. 끝없이 넓고 큰 바다, 허허바다.

볼음도 행 카페리는 시간의 물살을 느리게 거슬러 오른다. 여행자들은 섬으로 가는 배를 탔으나 자동차를 끌고 가는 한 결코 섬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자동차 안에 도시를, 도시의 삶을 통째로 싣고서야 어찌 섬에 이를 수 있겠는가. 자동차는 이방으로 가는 길을 차단하는 여행의 방해꾼이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서도면 볼음도. 여의도의 두 배 쯤 되는 섬. 섬이지만 사람들은 바다에 크게 기대고 살지 않는다. 민간인 통제구역 (민통선) 안이라 어로행위가 자유롭지 못한 탓이다. 볼음도의 어선은 단 두 척. 두 척의 배는 물고기도 잡고, 낚시꾼에게 대여되기도 한다. 130가구 270여명의 인구 중에서 10% 정도만이 뻘 그물로 밴뎅이와 병어, 숭어 등을 잡는 어민이다. 건강망, 개막이 그물이라고도 하는 뻘 그물은 조수간만의 차가 큰 갯벌에 그물을 설치해 배 없이 물고기를 잡는 어로다. 뻘 그물 어로의 유일한 경쟁자는 물새들이다. 다 잡은 물고기를 물새들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면 어부들은 물때에 정확히 맞춰서 갯벌에 나가야 한다.

볼음도의 주업은 농사다. 갯벌을 간척해 논을 만든 까닭에 한 가구당 평균 경작면적이 만 평이 넘는다. 섬은 오랜 옛날부터 나지막한 모래 산에 나무를 심어 방풍림을 조성했다. 세월이 흘러 섬은 분지가 되었다. 섬의 마을 안에서는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낮은 산들이 바닷바람을 막아 벼는 해풍의 피해를 입지 않고 튼튼하다.

민통선의 섬들. 볼음도는 교동도, 말도, 서검도, 미법도 등과 함께 휴전선 상에 위치한 섬들 중 하나다. 휴전선, 잠시 잊고 있었다. 이 나라는 아직 전장(戰場)이다. 전쟁이 시작된 지 60년이 가까워 오지만 여전히 전쟁은 끝나지 않고 있다. 그래도 한동안 계속된 남북 화해 노력 덕에 군사적 긴장은 크지 않고 섬으로의 출입도 자유롭다.

 


이 섬에서도 걷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몇몇의 관광객들은 자동차를 싣고 왔고, 한 무리의 단체 관광객은 민박집 차를 타고 마을로 들어간다. 마을 주민들은 경운기를 타거나 더러 트럭을 타고 다니기도 한다. 걸음을 잃어버린 시대. 이 시대의 끝 무렵이면 사람의 다리도 새처럼 가늘어지게 될지 모를 일이다.

아차도 여객선 대합실에는 할머니 몇 사람이 둘러 앉아 이야기 중이다. 작은 창고 같은 대합실 안은 몇 개의 나무 의자가 전부다. 해안으로 밀려온 바다 쓰레기를 줍던 노인들이 불볕의 더위를 피해 잠시 휴식 중이다. 바다 쓰레기 줍기는 이 섬 노인들의 주된 수입원이다. 일당 3만원. 마을은 25가구 대부분이 노인 독거 가구다. 노인들은 순번제로 바다 쓰레기 줍기에 나선다. 소득의 공평한 분배를 위해서다. 겨울에는 굴을 따고 여름에는 소라를 잡는다. 바다에서 나오는 소득은 미미하다. 배를 부리는 집은 여름이면 생선도 잡고 가을에는 새우도 잡아 제법 큰 소득을 올리지만 이 섬의 배도 몇 척에 불과하다. 갈수록 소라도 잘 잡히지 않는다고 노인들은 탄식한다. 배를 부리는 사람들이 바다로 나가 통발로 잡아들이니 해안으로 나올 소라가 거의 없는 탓이다.

“사람 사는 거 점점 힘들어 큰 일 낫수다.”

이 작은 섬이 옛날에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 일제시대, 조기가 서해 바다를 뒤덮었을 때는 천명도 넘는 사람들이 살았다. 지금은 주문도로 옮겨 갔지만 그때는 면사무소도 아차도에 있었다. 처마 밑으로만 다녀도 비를 피할 수 있을 정도로 비좁은 땅에 집들이 빽빽이 들어 차 있었다. 바다의 사람들이란 물고기를 따라다닌다. 물고기 떼가 떠나면서 사람들도 모두 떠나가 버렸다. 섬에는 작은 구멍가게 하나 없다. 생필품은 외포리의 가게에 주문하면 연락선으로 보내온다.

아차도리 다목적 회관 앞에서 슈크림 빵 하나와 생수 한 병으로 아점을 먹는다. 아차도리 다목적 회관은 마을 회관 경로당, 부녀회 사무실을 겸하고 있다. 회관 앞길에서 아이들 둘이 자전거 타기 놀이에 열중해 있다. 학교도 없는 이 섬에서 저 아이들은 어느 학교를 다닐까.

“애들아! 너희들 학교는 어디로 다니니?”
“강화요.”
“강화도 살아?”
“네”
“강화 어디?”
“갑곶이요.”
“여기 사는 게 아니구나. 놀러 왔니?”

이 동네에 살면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하나도 없다. 아이들은 강화로 유학을 간 것이다.

“집에 오니까 좋아?”
“좋아요.”
“뭐가 좋은데?”

아이들은 묵묵부답이다. 아이들뿐이겠는가. 이 세계에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 얼마나 많은가. 세상 모든 일을 다 해석하고 설명할 수는 없겠지. 아이들은 그냥 좋은 것이다. 나그네 또한 굳이 아이들에게 답을 얻을 생각은 없다. 아빠는 섬에서 배를 타고 돈을 벌 것이다. 엄마는 강화에 살며 아이들 학업 뒷바라지를 할 것이다. 아빠는 섬 기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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