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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고려청자가 인양됐던 바다

강제윤 시인 - 군산 어청도, 연도기행(1)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2.12.27 01:22
  • 수정 2015.11.11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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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동파도를 지나다 오전 9시, 외연 페리가 군산항을 출항한다. 이 항로를 오가는 정기 여객선 뉴어청도 페리는 정기 점검에 들어가고 예비선인 외연 페리가 대신 다닌다. 두 시간 반의 운항시간이 다시 세 시간으로 늘어났다. 뱃길은 멀고 날은 흐리다. 저 망망한 바다 위로 또 얼마나 많은 생애의 시간들이 흘러갔는가. 여객선은 낡았고 선원들은 늙었다. 외딴 섬으로 가는 여객들은 고단함에 지쳤다. 선실의 지하는 방이고 지상은 의자다. 바닥을 찾아든 여객들은 벌써 잠이 들었다. 먼 길 가는 뱃길에 잠 보다 빠른 지름길은 없다. 한 시간의 항해 끝에 중간 기항지 연도에 들른 배가 십이동파도 근해를 지난다. 12개의 섬들이 파도치는 모습 같다 해서 십이동파도.

지난 2004년에는 저 십이동파도 근해 수심 20m 바다 속에서 천 년 전 고려 시대의 난파선이 발견되기도 했다. 선체에서는 수천 점의 고려청자와 유물들이 발견 됐다. 해남에서 생산된 도자기를 개경으로 싣고 가던 배가 침몰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외연 페리의 선장은 30년 전까지만 해도 십이동파도에 서너 채의 집들이 있었다고 기억한다. 당시 섬에 살던 주민들 일부가 납북됐었다고 한다. 그 후 섬사람들은 강제 이주 당했고 섬은 무인도가 됐다. 국토 곳곳 분단의 상흔이 남지 않은 곳은 어디에도 없다.

첨단 장비로 가는 낡은 배
외연 페리호 최인엽 선장은 30년 넘게 배 위에서 살았다. 한국통신 배를 타고 낙도에 통신 시설을 설치하러 다니다 정년퇴직 한 뒤 여객선으로 옮겨왔다. 건조 30년이 넘은 낡은 여객선은 장비들도 오래되었다. 하지만 장비에 쓰이는 기술은 육상의 자동차들에 비하면 첨단의 고급 기술이다. GPS와 레이더, 에코 싸운딩. 선박의 항해술은 비행기와 함께 군사 기술의 혜택을 가장 먼저 받는 민간 분야다. 저런 장비들이 없었던 과거에는 나침반 하나에 의지해 망망대해를 항해했다. 더 먼 옛날에는 별자리와 해와 달과 바람의 안내를 받았을 것이다.

운전대 앞에는 아직도 마그네틱 컴퍼스(자기 나침반) 한 대가 놓여 있다. GPS가 도입된 뒤에는 실제로 쓰지 않지만 나침반은 운전실에 반드시 갖추어야만 하는 법정 비품이다. 나침반은 고정되어 있다. 뱃머리를 나침반의 원하는 각도에만 맞추고 간다면 여객선은 안개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다. 어청도는 군산에서 북서쪽, 280도. 뱃머리가 280도를 이탈하지 않으면 여객선은 마침내 목적지 어청도에 무사히 도달할 것이다.

 


GPS가 나침반을 대신해 항해 길을 잡아 줄 때 레이더는 항로의 온갖 장애물을 찾아내 안전운항을 돕는다. 레이더는 전파를 물체에 발사시켜 물체에서 반사되는 전파를 돌려받아 물체와의 거리나 방향, 고도 등을 알아내는 무선 감시 장치다. 이 여객선도 선상의 안테나를 통해 전파를 발사한다. 전파는 해수면의 모든 물체들, 선박과 암초와 파도에 까지 도달했다가 되돌아와 그들의 위치를 레이더 화면을 통해 알려준다.

레이더 화면에 점으로 보이는 것은 다른 선박들이다. 섬이나 암초는 면으로 나타난다. 파도는 일렁이는 물결 모양으로 표시된다. 넓게 퍼진 검은 색은 장애물 없이 평탄한 바다다. 에코 사운딩은 물의 깊이를 재는 수심 탐지기다. 바다 속으로 전파를 발사하면 전파는 해저에 부딪쳤다가 되돌아와 바다 속의 깊이를 가늠해 준다.

감옥인 동시에 탈주선이기도 한 여객선
여객선에 문제가 생겼을 때 예비선으로만 투입되는 외연페리는 4명의 선원들이 운항한다. 선장 1인과 기관장 1인, 항해사 2인. 바다 위에서 선장은 여객의 목숨을 관장하는 절대자다. 그래서 선장에게는 사법 경찰권까지 있다. 여객의 안전을 위협하는 자가 생기면 누구라도 포박하여 구금할 수 있다. 비상시에는 그토록 무서운 권력자가 되는 선장이지만 오늘처럼 평화로운 일상에서는 그저 인자한 뱃사공이다.

외연 페리는 날렵한 고등어처럼 유선형이다. 대부분의 선박들이 유선형을 선호하는 것은 그것이 물의 저항을 최소화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 여객선에는 1100 마력의 엔진 두 개가 장착되어 있다. 2200마력. 2200마리의 말들이 끄는 배. 엔진 두 대가 가동을 시작하면 선풍기 날개 모양의 프로펠러(스쿠류)가 돌면서 바닷물을 뒤로 차낸다. 그 날개의 힘으로 여객선은 거침없이 전진한다.

뱃전에서 쉬이 잠들지 못하는 나그네에게 세 시간의 항해는 길고 지루하다. 지루함은 시간 탓이 아니다. 정해진 항로를 벗어날 수 없는 절망감 때문이다. 일탈을 꿈꾸며 떠나왔으나 일탈이 봉쇄당한 뱃길. 배에 오른 이상 여객들은 선실 밖으로 한 치도 나갈 수 없다. 문을 열면 망망대해. 여객선은 바다의 감옥이다.

감옥을 벗어난 탈옥수에게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 선실 벽에 기대 잠시 눈을 감았다 뜨니 뱃고동이 운다. 어청도에 도착했다. 여객선은 어청도 부두에 승객들을 풀어 놓는다. 나그네를 가두던 여객선이 나그네를 해방시켰다. 여객선은 감옥인 동시에 감옥을 벗어나게 해주는 탈주선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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